[한국을 먹여 살릴 과학자] 나노입자 상용화 길 터… 1조달러(2015년) 시장 잡겠다

2004년 12월 세계 과학계는 동글동글한 입자가 가득 들어 있는 전자현미경 사진을 포함한 연구 논문에 경악했다. 현택환(玄澤煥·48) 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는 이 논문에서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입자를 기존 방법보다 1000배 저렴하면서도 양은 1000배 많게 생산하는 기술을 발표했다. 나노입자는 태양전지에서 암 진단 센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다른 과학자들이 이 논문을 앞다투어 참조하면서 전 세계 논문 가운데 피인용 순위가 상위 0.1%에 속할 정도로 높이 평가됐다.

현 교수는 향후 1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기초과학 연구를 선도하는 중책을 최근 맡았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연구 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이 지난 7일 현 교수 등 10명을 각 분야 연구단장으로 임명해 연간 최대 100억원씩 10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현 교수는 "내가 맡은 나노입자 기술은 기초과학이면서도 산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며 "얼마나 큰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세상에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나노입자는 전자·의료·에너지 등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사이언스(Science)지 등 과학계는 오는 2015년 나노입자를 응용한 산업 규모가 1조달러(약 1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현 교수는 "나노입자가 상용화되려면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하는데 우리 연구진이 그 답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 교수가 개발한 나노입자 대량 생산 기술은 2007년 말에 기술료 43억원을 받고 한화케미칼에 이전됐다. 국내 대학 역사상 최고액 기술 이전이었다. 이후 현 교수는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하는 나노입자 등을 연달아 개발했다.

현 교수는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에서 그동안 풀지 못한 근본적인 질문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나노입자가 어떻게 하면 잘 자라는지는 알아냈지만, 시초인 입자의 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 세계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노 연구는 모든 과학과 기술에 들어가는 도우미"라며 "끝은 이미 가보았으니 시작만 알면 바로 수많은 도우미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교수는 물리학·화학·재료공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 5~7명과 박사급 연구원 20~30명으로 연구단을 꾸릴 계획이다. 그 자신이 화학과를 나와 처음으로 공대 교수가 됐고, 공학자·물리학자·의학자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학문 융합의 힘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전공이 겹치는 연구자는 절대 뽑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현 교수는 "기초과학연구원의 또 다른 기능은 젊은 과학자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전공이 겹치면 그들이 그늘에 가려 성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유네스코(UNESCO)가 2011년 '세계 화학의 해'를 맞아 발표한 세계 100대 화학자에서 국내 학자로는 가장 높은 37위를 차지했다. 전공인 재료과학 분야에서는 19위. 피인용 전 세계 상위 0.1%에 드는 논문만 7편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피인용 1% 논문은 30편 이상이다. 젊은과학자상·듀폰과학기술자상·포스코청암상·호암상 등 국내 최고 과학상도 휩쓸었다. 2010년부터는 화학 분야 세계 최고 저널인 미국화학회지(JACS)의 부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름 때문에 미국 유학을 가려는 제자에게 '우리 연구실은 세계 세 손가락에 든다'며 말린 적이 있었어요. 그 제자는 제 말을 듣고 여기서 세계적인 논문을 쓰며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연구 그룹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