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상장은 한국 증시에 악재

그동안 집중 상승세를 탔던 정보기술(IT)주가 외국인 매도 공세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하루 동안 쏟아진 5000여억원의 외국인 순매도 중 3300억원이 IT주에 집중되며 삼성전자는 하루에 8만1000원(6.2%) 하락, 123만원까지 주가가 밀렸고, SK하이닉스도 8.9% 급락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6% 이상 떨어진 것은 지난 2008년 10월 24일 이후 3년7개월 만에 처음으로, 삼성전자는 작년 미국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증시 급락 때에도 하락률이 6%를 넘기지는 않았다.

◇외국인의 팔자 '맹공'의 중심엔 한국 IT

전문가들은 올 상반기 증시가 'IT로 흥하고 IT로 무너지는 꼴'이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에도 삼성SDI는 7%,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는 4% 넘게 내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비중 20%를 차지하는 IT업종이 빠지니 코스피 지수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3% 이상 급락한 1840에 마감했다. 전문가들이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한 코스피 주가지수 '1850선'이 16일 하루 만에 허망하게 무너지자,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 투자전략 팀장들은 하루종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문제는 이날 한국 IT주만 유난하게 급락했다는 것. 같은 날 일본 도쿄거래소에 상장된 소니와 파나소닉은 각각 0.89%, 2.5%, 대만 거래소에 상장된 홍하이는 3% 빠지는 데 그쳤다.

◇겹친 대형 악재

위기의 진원지보다 공포에 떨었던 이날 한국 증시는 '유로존 위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스의 연정 실패 소식에 IT관련 사건·사고와 소문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증시를 끌어내렸다.

①마이크론-엘피다와 손잡은 애플

애플이 마이크론-엘피다로부터 반도체 D램을 공급받을 것이라는 대만 디지타임즈 보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에 대형 악재였다. 소니-파나소닉이 손잡고 삼성전자에 대항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개발한다는 소식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팔자' 심리를 자극했다. 한 외국계 투자운용사가 삼성전자를 많이 담은 펀드를 청산하려 한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②페이스북 사려고 한국기업 판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미국의 페이스북 움직임도 한국 증시엔 초대형 악재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송상훈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계 투자자들이 다음 주 페이스북의 주식을 사기 위해 기존 주식을 팔고 있는데, 이 와중에서 한국 IT 관련 주식 비중을 줄이는 듯하다"면서 "2004년 구글 상장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업체 전문가도 "일부 투자자들이 IT업종의 이익 실현으로 확보한 현금을 바탕으로 페이스북 IPO 공모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해석했다. 전날 페이스북은 공모가를 28~35달러에서 34~38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시장에서 조달할 자금도 150억~160억달러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시계 제로' 증시

전문가들은 주가지수를 전망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다.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처음으로 200만원까지 끌어올렸던 외국계 증권사 메릴린치증권 측도 입을 다물었다. 다만, 유럽계 투자기관들의 투자 지침이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확실히 돌아선 만큼 유럽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증시가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전정우 삼성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유럽 금융기관들은 6월까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건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리스 사태까지 불거졌다"면서 "지수 자체가 너무 급격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섣부른 주식 투자와 투매는 삼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