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고금리예금 경쟁 가열… 덤핑 논란까지

주부 박모(44)씨는 지난달 S저축은행에서 2억원을 찾아 산업은행 KDB다이렉트 정기예금에 넣었다. 신규 고객에겐 연 4.5% 금리를 주는 고금리 예금상품이다. KDB다이렉트가 고금리로 고객들을 끌어가자, 다른 은행들은 '역(逆)마진 상품', '덤핑'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체 고금리 특판예금 상품을 내놓으며 고객 사수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엇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해 왔는데, 그걸 산업은행이 깼다"며 "덤핑 논란은 다른 은행들의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전쟁은 대출시장에서도 불고 있다. 기업은행이 지난해 12월 앞으로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대폭 내리겠다고 공언한 이후, 금융회사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금리 인하 경쟁에 가세하는 양상이다.

◇산업은행이 예금금리 경쟁 촉발

예금 금리 경쟁은 은행권 후발주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수시입출금 예금에까지 3.5% 금리를 주며 부동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다른 은행들이 1% 안팎의 금리를 주는 것에 비해 파격적이다. 외환은행은 윤용로 행장의 영업 강화 전략 선포 이후에 고금리 특판예금 판매에 열을 올렸다. '예스 큰 기쁨 정기예금'을 특판 형식으로 팔았는데, 최고 금리가 4.25%였다. 6월 말까지 2조원을 판매하는 게 목표였는데, 한도가 지난 11일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휴대전화 채널을 이용한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농협은행의 내사랑독도 채움사이버정기예금은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입해, 게임 포인트를 쌓으면 금리를 더 얹어 주는 식이다. 기본금리는 3.77%인데, 게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연 4.62%까지 받을 수 있다. 하나은행·국민은행·신한은행의 스마트폰 전용상품들 또한 4% 이상의 금리를 준다.

◇기업은행발 대출금리 경쟁 시작

대출 시장에서도 금리 경쟁이 시작됐다. 기업은행이 연초 중소기업대출 금리를 최고 2%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신한은행은 오랫동안 거래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를 1%포인트 인하했다. 이를 방증하듯 올해 1분기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5.96%로 전 분기(6%)보다 소폭 하락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과 농협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출시장을 늘리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며 "지금까지는 서로 눈치만 보는 마케팅 차원이지만 대출금리 인하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은행들의 전체적인 대출 금리 인하 경쟁은 소극적이다. 국내 은행의 올 1분기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는 2.90%포인트로 지난해 평균(2.96%포인트)과 큰 차이가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예금 금리로 경쟁을 하더라도, 은행 수익성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 대출 금리는 낮추지 않는 방식으로 은행들이 이익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금융 당국은 은행끼리의 경쟁이 은행 건전성을 해칠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최근 시중은행들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캠페인, 영업 성과에 따른 직원 포상 내용 등에 대한 세부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이 총상금 30억원을 내걸어 점포 간 경쟁을 유도하고, 농협은행이 상금 5억원을 내걸고 직원들에게 예금 유치 캠페인을 독려하는 등 과열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은행권 전체가 매 분기 10조원 안팎의 이자이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제 살 깎아먹기식의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소비자들에게 금리를 좀 더 돌려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편이어서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지나친 경쟁으로 시장이 혼탁해지지 않도록 감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