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동네의사들, 한날한시 PC 앞에 앉아 뭐 보나 했더니

"꼭 '서울 큰 병원'에 올 필요가 있을까요? 가까이 있는 의사가 잘 돌보면 됩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 서울성모병원 5층 수술실. 진갑(進甲) 노(老)교수의 손놀림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102세 할머니의 대장암 수술에 성공, 국내 최고령 암 환자 수술 기록을 세운 대장항문외과 김준기(62·사진) 교수다.

이날 김 교수의 수술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경북 안동, 전남 화순, 제주도 등 전국 곳곳에 생중계됐다. 명의(名醫)의 '강남 인강(인터넷 강의)'인 셈이다. 강의는 김 교수가 자신의 수술 노하우를 지역 의사들에게 전수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시골 의사' '동네 의사' 등 200여명은 각자 컴퓨터 앞에 앉거나 스마트폰으로 노교수의 수술장면을 지켜봤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노트를 꺼내 든 의사도 있었다.

푸른 수술복을 입은 김 교수는 수술에 집중하다가도, 한쪽에 마련된 모니터에 눈길을 줬다. 모니터에는 패널로 선정된 시골의사 5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터넷을 통해 수술장면을 바라보던 패널이 "거기서는 어떻게 진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김 교수가 "최대한 출혈을 조심하면서 절개는 이렇게 하면 된다"면서 시연하는 식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의대생·간호사 등 누구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강의를 볼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기존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 수술중계)와 다르다.

김 교수의 인강은 지난 2월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김 교수는 "공룡급(級) 큰 병원에만 환자들이 쏠리는 현상은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이날 김 교수의 강의를 지켜본 정봉수 경북 안동병원 외과부장은 "지역 병원의 의료서비스 수준이 개선되어야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줄일 수가 있는데, 지역의사들은 거리나 비용 문제 때문에 새로운 수술 기법을 공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강생 가운데는 전문의 과정을 거친 베테랑도 많았다. 이들은 수술의 기법뿐만 아니라 '노교수의 여유 있는 수술자세가 인상적'이라는 강의평을 내놨다. 장원영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수술에서 암 조직이 예상보다 아래에 있어 집도의가 당황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김 교수님께서는 이를 매끄럽게 처리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박성무 속초의료원 외과과장도 "수술할 때 특히 해부학적 구조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간 축적한 복강경 수술(복부를 절개하지 않고 특수 카메라가 부착된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 기법)의 노하우를 가르치고 싶어도 배울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의대생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바람에, 4~5년 전부터 수술실에 외과 레지던트 대신 남자 간호사가 들어오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시가 급하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늙어버리면, 아는 것도 몸으로 보여줄 수가 없지 않겠어요. 수업을 듣는 시골의사들의 얼굴은 모르지만, 결국 내 제자가 많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 혼자 평생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