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粉)하고 바늘 여섯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분(粉·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500년 전 남편이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담아 쓴 한글 편지가 국가기록원에 의해 복원됐다. 국가기록원은 지난해 12월 복원한 이 편지가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이라고 20일 밝혔다.

편지는 지난해 5월 3일 나신걸(羅臣傑·15세기 중반~16세기 전반)이라는 군관의 부인 신창 맹씨(新昌 孟氏)의 묘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목관에서 미라, 복식 등과 함께 출토된 이 편지는 2장이 접힌 상태로 신창 맹씨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나미선 국가기록원 연구사는 "아내 맹씨가 숨을 거두자 평소 그가 아끼던 남편의 편지를 함께 매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편지에는 정확한 작성 연도가 없지만 국가기록원이 나신걸과 부인 맹씨의 족보 등을 확인한 결과 기존 최고(最古) 편지였던 충북 청원군 순천 김씨 묘에서 나온 한글 편지(1555년)보다 50여년 정도 앞선다는 결과가 나왔다.

남편 나신걸은 함경도로 부임받아 가는 중에 지금의 대전에 있는 아내 맹씨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마음대로 집에 가면 병조(국방부)에서 잡아다 귀향을 보내니 이런 안타까움이 있을까"라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나 연구사는 "분과 바늘은 당시 명나라에서 들여오는 값진 수입품이었다"고 말했다.

편지엔 당시 관원들의 옷차림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도 나온다. 나신걸은 편지에서 "함경도엔 흰 베와 명주(비단)가 흔하고 무명(면직물)이 아주 귀하니 관원이 다 무명옷을 입는다"며 "무명으로 관복을 만들어 보내달라"고 아내에게 당부했다.

국가기록원은 한지에 쓰인 편지를 다른 한지에 덧붙인 후 이를 비닐 사이에 집어넣어 밀봉했다. 작업에 6개월이 걸렸으며 보존 기한은 반영구적이다. 송귀근 국가기록원장은 "부부의 날(5월 21일)을 맞아 조선시대 부부의 정을 담은 기록물을 복원했다"며 "조선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편지엔 16세기 조선에서 사용하던 경어체 '하소'라는 말이 적혀 있어 당시 부부 사이에도 서로 존칭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