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클래식] 구원·사랑의 신파극… 노년들엔 생명의 영약 같은 책

고전은 심오하고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독자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특히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으라고 하면 지레 손사래를 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작 '파우스트'를 읽은 독자들은 적다. 특히 2부를 읽은 독자는 전공자 외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전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스토리가 단순하기 그지없다.

자, '파우스트'첫 장을 보자.

극장에서의 서막은 관객이 좀처럼 극장에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단장과 배우, 연출가들의 푸념으로 시작된다. 단장은 말한다. "내 희망은 가능한 많은 관객을 다시 극장에 불러 모으고, 연극은 여전히 매력적인 볼거리라는 걸 증명했으면 하네."

서장에서 괴테는 분명하게 이 작품이 극장에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파우스트의 서재 장면도 그렇다.

"나는 철학, 법학, 의학 심지어 신학까지도 다 섭렵했다. 그런데도 나라는 인간은 이 모양 이 꼴로 예전에 비해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결국 늙은 학자 파우스트는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자필로 적어 놓은 신비스러운 책을 펴들고 주문을 외우면서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꿈꾼다.

여기서 우리는 파우스트가 심오한 철학과 사상으로 뒤덮인 고전이 아니라 상당히 엉뚱한 마법과 환상을 찾아 나가는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뒤이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하여 계약을 맺고, 파우스트 박사는 메피스토펠레스와 세상 여행을 떠난다. 사색을 중단한 대가로 청춘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처녀 그레첸을 발견한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나는 저런 처녀를 아직 만나본 적이 없어. 단정하고 정숙해. 붉은 입술 복사꽃 피부, 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잊지 못하리라."

그리하여 노학자 파우스트와 젊은 처녀 그레첸의 사랑이 전개된다. 지금 시대라면 아마 인터넷에 오르고 신문에 나면서 노학자 파우스트는 사회로부터 매장될 것이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메피스토의 농간으로 파우스트는 그레첸의 오빠 발렌틴을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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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재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꿈속에서 젊은 여자와 사랑을 했어" 그러나 그건 꿈이 아니었다, 그레첸이 거리를 헤매며 파우스트를 찾고 있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서재로 찾아온 그레첸에게 다시 늙은 모습으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 발밑에 엎드려 있소 그레첸!" 절규하면서 늙은 얼굴을 숨긴다.

"시간이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이 장면에서 독자는 엄청난 순애보에 몸을 떨고, 극장 객석은 눈물바다가 된다. 정말 대단한 신파극이 연출되는 것이다. 메피스토는 그제서야 하늘에 대고 묻는다.

"우리는 심판받았소?"

신은 대답한다. "구원받았노라"

결국 신도 이 노학자와 처녀의 사랑에 감복하여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대단한 신파극,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판단하기 위해 신이 꾸민 운명의 장난질이 고전 파우스트의 세계인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되는 21세기, '파우스트'는 늙은 독자들에게 생명의 영약 같은 책이다. 학벌 나이 세대 간의 격차를 뛰어넘는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야말로 시간을 멈추게 하는 힘이다.

고전 '파우스트'는 공연이 될 때마다 흥행 불패의 신화를 낳았다. 한국 최고령 배우 장민호 선생은 생전에 파우스트를 세 번이나 하셨고, 그 세 번째 연출가가 바로 나였다. 1997년 국립극단 제작으로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 대극장에서 공연된 '파우스트'는 관객 동원 8000명의 대기록을 세웠다. 당시 메피스토는 신구, 그레첸은 젊은 신인 여배우 방주란이었다.

젊은 여배우 방주란은 공연 내내 울고 다녔다. 나이 팔순의 노배우께서 거친 수염이 난 턱으로 문지르고 키스를 너무 강렬하게 하는 바람에 얼굴이 따갑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눈물을 달고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장민호 선생께서 뺨을 문지르거나 키스를 할 때 얼굴을 돌리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 장민호 선생께서 갑자기 공연의 의욕을 잃으셨다. 그렇게 형식적으로 거짓연기를 하면 무슨 신바람이 나고 감동이 전해지겠느냐는 거였다. 그러자 방주란이 이제 울지 않고 제대로 연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떤 날은 장민호 선생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그레첸과 키스하는 장면에서 쪽! 쪽! 입맞추는 소리가 객석에까지 분명하게 전달되기도 했다. 그 소리는 영원히 젊어 있는 노배우의 존재를 증명하는 천상의 울림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파우스트' 140자 트윗 독후감]

"그가 지상에서 살고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천상에서의 서곡에서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놓고 이야기하는 한 대목.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가장 강하게 와닿은 부분입니다. (페이스북 응모자 정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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