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60·70대의 '시네마 천국'… 추억 속으로

이날은 이 영화관에서 2주마다 열리던 '실버콘서트'의 마지막 공연 '어르신의 문화를 지켜주세요-孝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1964년부터 단관극장의 명맥을 이어오던 이 극장이 폐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서대문아트홀의 전신(前身)은 1964년 문을 연 화양극장이다. 이 극장은 특히 1980년대 홍콩영화 붐을 타고 발빠르게 '천녀유혼' '영웅본색 1·2' 등을 상영하면서 영등포의 명화극장, 미아리의 대지극장 등과 함께 홍콩영화 상영 3대 극장으로 불렸다. 이후 홍콩영화의 인기가 떨어지고, 대기업들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세가 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점점 뜸해졌다.

옛 허리우드 극장 자리에서 역시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을 운영하는 김은주 대표가 극장을 인수해 2009년 5월 극장 이름을 서대문아트홀로 바꾸고, 노인전용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단장했다. 그러자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극장에 문화 시장에서 소외됐던 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닥터지바고' '자이언트' '남태평양' 등 1950∼60년대 할리우드의 고전영화와 50~60년대 만담과 가요가 주를 이루는 실버콘서트를 2000원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작년 이 자리에 관광호텔을 짓도록 허용하는 사업시행인가를 고시하며 극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극장 입구에는 다음 상영될 영화의 포스터 대신 '우리 극장을 살려주세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개발업체 쪽에서 올해 초 극장 자리를 비워달라며 극장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 소송에서 지면 서대문아트홀은 철거되고, 대신 신세계건설에서 짓고 호텔신라가 위탁운영하는 관광호텔이 들어서게 된다.

이날 마지막 실버콘서트에는 안영애, 명국환씨 등 50∼6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원로가수 10여명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무대에 섰다. 가수들은 '울고넘는 박달재' '내 마음 별과같이' 등 추억의 히트곡으로 공연을 채웠다.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 우지라마' 등을 부른 가수 명국환(79)씨는 화양극장 시절부터 이 무대에 섰다고 털어놨다. 명씨는 "그때는 무대도 얼마나 허술했던지 조금만 움직이면 뒤로 무대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서대문아트홀과 우리와 관객은 같은 처지다. 옛날에는 다들 잘나갔으나 나이가 들자 버려지는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대전부르쓰'를 부른 안영애(76)씨는 "이 공연장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에게 살아있는 추억과 같은 존재"라 말했다.

공연을 찾은 관객들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충북 청주에서 온 이익환(62)씨는 "예전 대학시절 이곳에서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근처에 있는 호산나 제과점에서 빵을 먹는 게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다"며 "그때의 추억을 잊지 못해 아직도 1주일에 2번씩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서울 상계동에서 온 김순자(57)씨도 "서울 시내에 우리 또래의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는 없다"며 "이곳이 사라진다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종료 예정시간인 오후 3시 30분을 훌쩍 넘겨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앙코르만 10번 이어졌다. '각설이 타령'으로 마지막 앙코르 무대를 장식한 가수 지창수(53)씨는 악수를 청하는 관객에게 "다음 번에 또 볼 텐데 뭐"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흥에 겨워 무대에 오른 관객 최정자(59)씨가 크게 화답했다. "봅시다. 다음 번에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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