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먹자판' 된 예술의전당

지난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주변의 야외 광장과 계단 광장에는 대형 텐트 10여개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독일 맥주와 치킨·소시지, 와인과 샌드위치, 커피와 초콜릿, 떡집까지 흡사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 지하의 식품 매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콘서트홀 정문 앞 야외 자동차 전시장에서는 고급 승용차를 비치해놓고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계속 틀어놓고 있었다.

5월 들어 예술의전당이 '먹자판'으로 변했다. 오는 28일까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 8시까지 '5월 가족축제'라는 명목으로 이 같은 장터가 열린다. 회사원 김모(53)씨는 "뉴욕이나 파리에서도 공연장 한복판에 버젓이 텐트를 설치하고 한 달 내내 먹거리 장터를 여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물론 그럴 리 없다.

작년부터 예술의전당은 식음료 사업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작년 8월 맥주 페스티벌과 10월 와인 페스티벌을 열어서 각각 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가족축제에서도 1억여원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이 수익 사업에 매진하는 건 거꾸로 취약한 재정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예술의전당의 예산은 580억원이지만 국고 보조금은 24.9%(144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75%는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 이 때문에 공연이라는 '본업' 외에도 수익 창출을 위해 먹거리 장터 같은 각종 '부업'까지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은 "최근 고객 자문단 회의에서도 예술의전당의 품격이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나와서 지나친 식음료 사업은 재고(再考)하고, 가족 관객을 위한 주말 야외 공연에 비중을 싣는 방향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