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만 車 한 대 값(1000만~2000만원)… 전기차 확산 2020년은 돼야
입력 : 2012.05.23 03:03
가격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고 배터리 부피·무게도 줄여야
1회 충전에 200㎞ 이하 주행… 대부분이 서울서 대전도 못 가
올해 100곳 급속충전소 설립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 개선
지난달 말 미국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나스카 스프린트컵에 포드의 전기자동차 '포커스 일렉트릭'이 등장했다. 자동차경주 시작 전 경주차량 대열을 이끌며 맨 앞을 달리는 페이스카(pace car)로 나선 것. 비록 정식 경주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순수 전기차가 이 대회에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전했다.
포드는 왜 이런 시도를 했을까. 배럴당 유가(油價)가 10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 시대에도 전기차 판매가 신통치 않자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기름을 연료로 사용해 움직이는 자동차가 연료비 부담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비싼 차값과 짧은 주행거리, 턱없이 부족한 충전 인프라 등을 이유로 전기차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 언제쯤이면 고속도로, 도심에서 전기차가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전기차 5년 내 가격하락 힘들다"
기아자동차가 지난해 말 출시한 '레이'의 가격은 가솔린 모델 기준으로 1240만~1495만원. 동일한 외관의 레이 전기차 모델은 4500만원(정부보조금 제외 시)에 달한다. 이처럼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때문이다.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전기차 배터리 가격은 1000만~200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크레딧 스위스에 따르면 전기차용 배터리 가격은 2009년 1㎾h(킬로와트시)당 1200달러에서 지난해 8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가격이 지금의 절반 이하인 ㎾h당 300달러 수준으로 떨어져야 일반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위해 지갑을 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가격을 달성하는 시점은 2020년 전후로 예상된다. 크레딧 스위스의 야마구치 준 애널리스트는 "반도체·LCD와 비교하면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생산업체가 많은 편이지만, 2015~2016년까지는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이 크게 성장하기 어렵고 큰 폭의 가격 하락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아직까지 전기차 양산 경험이 없기에 테스트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주행거리·충전 인프라 개선 시급
연비가 1L당 15km인 가솔린차는 휘발유 30L를 넣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리 없이 갈 수 있다.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는 1회 충전으로 200㎞ 이상 갈 수 있는 차종을 찾기가 힘들다. 일례로 국산 전기차 레이는 1회 충전으로 91㎞(실용연비 기준)까지 주행할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한다면 대전도 못 가서 차가 길에 서버리는 셈이다. 현대·기아차의 이기상 상무는 "한 번 충전으로 200km 이상 주행하는 전기차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기아차가 2014년에 준중형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현대차는 2015년에 준중형급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 전기차는 대부분 리튬이온 2차전지(충전해 다시 쓰는 배터리)를 쓰고 있다. 전기차가 보급돼도 충전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국내에선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실증 단지가 운영되고 있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전기차 충전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환경부 박광칠 전기차 보급추진팀장은 "올해 전국적으로 100곳 정도의 급속충전소를 설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의 판도는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국인 미국과 중국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가 올해 선거를 치르면서 당분간 전기차 관련 지원정책이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이후에 전기차 관련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기는 힘들다"며 "전기차 보급에 대한 전망을 1~2년 뒤로 미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