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세계경제 구원투수서 힘없이 퇴장하나

세계 경제가 그리스발(發) 쇼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이면에는 '성장 엔진' 중국 경제의 부진이 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당시엔 중국이 홀로 고공 행진하며 세계 경제의 완충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 '트리플 딜레마'에 빠져 운신의 폭이 제한되고 있다. 경기 부양이냐 인플레냐, 수출이냐 내수냐, 성장이냐 분배냐를 둘러싼 논쟁 사이에서 명쾌한 묘수(妙手)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12일 올 들어 두 번째로 금융기관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했지만, 현재 중국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는데, 지급준비율 0.5%포인트 내린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조차 "단순한 통화정책 완화가 얼마나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지 지켜봐야 한다"고 썼다.

올해 1분기(1~3월)에 바닥을 칠 것으로 예상했던 중국 경제가 2분기 들어서도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경제 성장의 3대 축인 수출과 투자, 소비 모두 줄줄이 하강 곡선을 그렸다. 〈그래픽 참조〉 통계의 정확성에 의문이 많은 중국에서 가장 정확한 경제지표로 꼽히는 전력 사용량도 지난 4월 전년 동기 대비 3.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발 유로존 위기가 재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어 중국의 수출 전선에는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중국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1분기 바닥론'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3분기는 돼야 경기가 바닥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속출하고 있다. BOA메릴린치는 2분기 중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8.5%에서 7.6%로 수정했다. 중국이 마지노선으로 삼는 '바오바(保八·8% 성장을 의미)'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광다(光大)은행의 성훙칭(盛宏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하락 압력이 뚜렷한 상황이다. 2분기 성장률은 7.5%까지 떨어지고, 3분기는 돼야 바닥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①경기냐 물가냐

중국 국내외에서는 중국 정부가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연초부터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금리 인하 전망도 제기됐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2월 이후 3개월 만에 지급준비율을 한 차례 내리는 것 이상의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

여기에는 올해가 10년 만의 권력 교체기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올 10월 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을 최고지도자로 하는 5세대 최고지도부를 출범시킨다. 권력 교체기를 맞은 중국 당국의 올해 최대 정책 목표는 사회 안정이다. 그 기반이 바로 물가 안정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4월 물가가 3.4%로 안정된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서야 이달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했다. 부동산 시장도 꽁꽁 묶어두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다. 물가가 급상승한 시기마다 사회 불안이 고조됐다는 것이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도 연 18%를 웃돈 고물가가 주요인이었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경제 분석가는 "과거 권력 교체기 때도 중국은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물가 관리에 집중했다"면서 "올해 경기가 하락한다고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②수출이냐 내수냐

중국이 직면한 또 하나의 고민은 수출 감소를 대체할 내수 확대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내수 중심으로 경제발전 방식을 전환한다는 목표를 외쳐왔지만, 내수의 두 중심축인 투자와 소비 모두 상황이 여의치 않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25~30%대를 유지해온 투자 증가율은 올 4월 20.2%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조위안(약 720조원)의 경기 부양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중국 지방정부들도 투자 여력이 크게 줄었다. 그나마 꾸준한 흐름을 보여온 소비도 지난 4월 증가율이 14.1%까지 하락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6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주재로 국무원 상무회의(국무회의 격)를 얼어 에너지 절약 가전제품 구입 보조금으로 재정 363억위안(약 6조60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로 종료된 가전 보조금 정책을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③성장이냐 분배냐

권력 교체기를 앞두고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갈등도 골이 깊어지고 있다. 좌파 진영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충칭(重慶) 모델'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영 기업 중심의 중국식 경제 발전 모델을 확대하면서 분배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반면, 우파들은 이를 '포퓰리즘'으로 비판하면서 국영 기업 민영화, 시장 경제 개혁 강화로 계속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베이징 정법대(政法大)의 한 교수는 "보시라이의 실각에도 불구, 중국에서 그에 대한 지지는 여전한 상황"이라면서 "올해 말 출범하는 차기 최고지도부가 경제 발전 전략을 놓고 어려운 선택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