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숨쉬는 보석

"이게 고(故)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목걸이입니다. 전 남편 리처드 버튼이 선물한 건데, 지난해 뉴욕 경매 행사 때 100만달러(약 12억원)에 낙찰됐죠. 재밌는 건 석 달 전 파리 경매에서 개인 소장가가 내놓은 똑같은 목걸이는 불과 8만유로(약 1억2000만원)에 팔렸다는 겁니다. 보석의 가치가 '역사(history)'에 있음을 보여주는 거죠."

지난 19일 중국 상하이 현대미술관(MOCA). 저녁 어스름을 헤치고 모인 관람객들의 시선이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전시장에 설치된 100여개 투명 아크릴 전시대 가운데 구(球) 모양 전시대를 향했다. 안에는 목 둘레에 착 감기는 사자 모양 펜던트 목걸이 '바르퀘롤 네클리스'가 들어 있다. 황금 목걸이 줄 사이사이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사자 펜던트 끝에는 동그란 황금색 고리 두 개가 겹치듯 달랑거렸다. 사람들은 전시품 옆에 붙어 있는 생전의 리즈 테일러의 사진을 보며 낮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20세기 최고의 신데렐라'로 불리는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 컬렉션도 눈여겨볼 만했다. 1956년 레니에 국왕이 그레이스 켈리에게 약혼선물로 건넨 팔찌·반지·귀고리·목걸이 등을 선보인다. 반클리프 아펠 측이 전시를 위해 왕실에서 특별 대여했다. 그레이스 왕비가 그의 딸 캐롤라인 공주 결혼식에서 착용한 77.34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티아라(왕관), 지난해 모나코 알베르 2세 국왕과 결혼한 샤를렌 왕비의 물결무늬 티아라도 여심(女心)을 흔든다. 샤를렌 왕비 티아라 제작과정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돼 전시관 한쪽에서 볼 수 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중국 상하이 현대미술관의 특별 전시회 '반클리프 아펠, 타임리스 뷰티(Van Cleef & Arpels, Timeless beauty)' 오프닝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300여명의 관람객들. 오는 7월 15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는 프랑스 명품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이 1990년 이후 20여년간 진행해온 주얼리 컬렉션 전시회 중 하나. 1906년 프랑스 파리 방돔 메종에서 출발한 반클리프 아펠의 대표 작품 370여점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1920년대 아르데코(파리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유행한 기하학적이며 이국적인 미술양식) 스타일부터 할리우드 톱스타와 유럽 왕실이 애용하는 현대적 디자인까지, 100여년에 걸친 예술 트렌드를 주얼리 컬렉션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관은 자연(Nature)·이국적임(Exoticism)·우아함(Elegance)·여성미(Femininity)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전시관 입구엔 '과학과 예술의 결합'에서 가장 모범사례로 꼽히는 대표작 '지프 네클리스(지퍼형 목걸이)'가 있다. 기다란 투명 아크릴기둥 안에 들어 있는 이 작품은 1930년대 영국 윈저 공작부인이 주문 제작한 제품으로, 오랜 개발 끝에 완성돼 정작 윈저 부인은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목 뒤쪽 줄을 분리해 지퍼를 올리면 팔찌로, 지퍼를 내리면 목걸이로 사용할 수 있는 '파스파투(pass-partout·변형을 줄 수 있는 주얼리)'의 원형이다. 이 작품을 주문할 수 있었던 재력 뒤에는 연인을 위해 왕위도 내던진 영국 에드워드 8세의 사랑이 있었다.

옷핀을 구두 뒤쪽에 꽂아 새로운 패션스타일을 완성한 재클린 케네디의 컬렉션, 공연 때마다 옷 위에 브로치를 찼던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컬렉션, 독일 출신 명배우 마를렌 디트리히의 컬렉션 등 패션과 예술을 사랑했던 여성들의 애장품들도 모두 공개됐다. 줄리아 로버츠의 목걸이, 스칼렛 요한슨의 귀걸이, 케이트 블란쳇의 팔찌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시상식에서 착용했던 현대적 주얼리도 볼 수 있다. '트롱프 뢰유(trompe l'oeil·실물 같은 제품), '미스터리 세팅(보석을 받치는 금속 틀이 전혀 보이지 않게 섬세하게 세팅하는 것)' 등 과학적인 주얼리 제작의 역사도 실물로 소개된다.

전시를 기획한 반클리프 아펠의 헤리티지(heritage·유물) 디렉터 캐서린 캐리우는 "중국·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전통적 문화가 우리 브랜드를 포함해 전 세계 주얼리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며 "특히 상하이가 자유로운 예술적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이기 때문에 이번 전시를 결정했다"고 했다. 사무엘 쿵 상하이 현대미술관 관장은 "100년 된 주얼리의 시대적 상징성이 현대 미술에도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