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채권국 日, 신용 2단계 떨어져도 코웃음

"일본은 신용등급 평가 자체를 믿지 않는다."

세계 3대 신용 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Fitch)가 일본 국채(國債)에 대한 신용등급을 두 단계 강등해 한국과 같아졌지만, 일본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일본 주요 신문 중에 요미우리는 1면 톱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지만 니혼게이자이나 산케이, 마이니치 등은 안쪽 면에 간단하게 보도했다.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오히려 올랐고, 국채 값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만기 10년물 국채 유통수익률 0.009%포인트 상승)

주가는 2.0% 하락해 비교적 많이 떨어졌지만 신용등급 때문이 아니라 이날 발표된 일본의 4월 무역 적자가 예상보다 컸다는 소식과 유럽 경제 위기 심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은 "신용등급이 뭐냐"고 되물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의 스즈오키 다카부미(鈴置 高史) 편집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신용등급 회사에 대한 불신이 높고 시장에 영향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아즈미 준(安住淳) 재무상은 "개별 회사의 신용등급 평가에 대해 코멘트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23일 도쿄 외환시장은 전날보다 엔화가 소폭 강세로 마감됐다.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면서 수요가 몰리는 현상이 계속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인 일본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점에는 "일본 경제가 위기라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경제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신용등급 하락, 무역 적자에도 엔화 강세

피치는 일본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유로 일본의 공공 부채가 GDP에 비해 과다한 데다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피치는 일본의 공공 부채가 연말이면 GDP의 230%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같은 비율이 65% 정도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국채시장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일본 국채의 95%를 일본의 기업과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데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안전 자산으로서의 엔화 자산(일본 국채) 투자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에 S&P가 일본의 신용등급을 내렸지만 그 뒤 일본 국채 값은 오히려 올랐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연초 연 0.98%에서 23일 현재 0.87%로 떨어졌으며(국채 가격은 상승), 지난 16일엔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인 0.82%를 기록했다.외국인들이 채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위기 징후가 보이면 갑자기 돈을 빼가기 때문에 국채 금리가 치솟는(국채 가격 하락) 그리스나 스페인, 한국 같은 나라와 일본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경상수지 흑자국 국가 부도 있을 수 없어"

미즈호 종합연구소 다카다 하지메(高田 創)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정으로 비유하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서 돈을 빌려 아버지의 신용도가 떨어졌지만, 가정 전체로는 재무적으로 건전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난하지만 국민과 기업은 여전히 부자라는 것.

또한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지만 경상수지는 여전히 흑자라는 점도 일본 국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작년에 무역수지가 30여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지만 투자 수익 등 경상수지는 10조엔에 육박한다. 순(純)국제 투자액이 253조100억엔(약 3조1800억달러)으로 수출을 하지 않아도 매년 막대한 달러가 굴러 들어오는 구조이다.

최악의 경우 세금을 올릴 여지가 있다는 점도 일본 국채시장의 버팀목이다. 현재 일본의 소비세는 5%로 15~20% 정도인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 비해 인상의 여지가 크다. 다만 소비세 인상을 두고 찬반론이 팽팽하게 맞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국채 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일본 국민들이 국채를 더 이상 사지 않아 작년 지진 때에도 20조엔의 복구자금 중 국채 발행을 통해 10조엔밖에 조달 못 했다"며 "재정이 회복되지 못하면 20년째 이어진 저성장이 회복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