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가꾼 골프장에 차 수백대 들이는 사장님

대보그룹 최등규(崔登奎·64) 회장은 그룹 계열사인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 골프클럽에서 라운드를 할 때마다 뒤춤에 호미를 꽂고 다닌다. 카트를 타지 않고 직접 걸어다니면서 군데군데 나 있는 잡초를 뽑기 위해서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골프장 페어웨이 잔디 위에 일년에 하루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자동차 수백 대가 들어서는데도 그는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고 했다. 매년 5월 일반인에게 골프장을 무료 개방하는 자선 축제 '그린 콘서트'가 올해로 10회째를 맞는다.

최등규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파격적인 행사를 계속 추진해왔다. '다 함께 가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경영 철학 때문이라고 했다. 성수기인 5월 주말 하루 18홀 코스 전체를 휴장하는 손실에다 유명 연예인 초청 비용, 사람에 밟히고 자동차 열기에 타버린 잔디 복구 등에 드는 비용을 따지면 5억원이 훌쩍 넘는다.

최 회장은 "지역 주민들과 친해지고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며 "골프장 문턱을 낮춰 문화와 정이 넘치는 골프장을 만들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첫해 1500여명이었던 관람객은 작년 3만5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부터 와서 기다리는 문화 행사로 자리잡았다.

오는 26일 오후 2시 밸리코스 1번홀에서 열리는 올해 그린 콘서트에도 엠블랙, 티아라, 김장훈, 백지영, 허각, 추가열 등 인기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한다. 특히 올해는 많은 관람객이 무대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3개월간 4000여만원을 들여 코스 평탄화 작업을 했다. 초기엔 골프장 회원 가운데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회원들이 직접 경품과 성금을 내놓으며 함께 참여하는 축제가 됐다. 먹거리 판매·바자회 수익금은 전액 파주보육원, 휠체어 보내기 운동본부 등에 전달한다.

최 회장은 평소 근검절약하기로 소문나 있다. 22일 찾은 서울 수서동 최 회장 집무실에는 소파 하나 없이 업무용 책상과 회의용 테이블뿐이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마분지를 이어붙인 결재판을 사용한다.

충남 보령에서 가난한 농부의 5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8세 때 보리쌀 한 말을 어깨에 메고 무작정 상경했다. 넉넉한 목장 하나 갖고 싶다는 꿈을 품고 껌팔이, 신문배달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었지만 광산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해 사글세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갖은 고생 끝에 재기해 지금은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중견 그룹을 이끌게 됐다. 최 회장은 "어려운 시절을 경험하면서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삶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했다. 2009년 모교인 대천고에 21억원을 들여 기숙사형 학습관을 지어줬고, 지난달 서울대병원 의학발전기금으로 사재 3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서원밸리 골프클럽은 26일 행사가 끝나자마자 밤새 코스를 복구해 이튿날 정상 개장한다. 오는 9월엔 퍼블릭 코스를 확장해 총 45홀(멤버십 18홀·퍼블릭 27홀) 규모로 새 단장을 하게 된다. 최 회장은 "푸르른 5월 정성껏 관리된 잔디 위에서 온 가족이 마음껏 뛰노는 즐거운 소풍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