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41] "조선 것을 없애는 게 박람회냐?"

20세기 들어 이 땅에 근대적 박람회가 선보이기 시작했으나 마냥 재미있는 구경거리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에 "총독 시정(施政)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조선일보 1929년 8월 29일자 사설)하고 일본 상품을 선전하려는 잔치판이었다. 일제하 지면에 등장하는 가장 큰 박람회인 '조선박람회'는 1929년 9월 12일 경복궁에서 개막됐다. 고즈넉하던 조선의 궁궐 곳곳은 일본인들이 세운 울긋불긋한 선전물로 뒤덮였다.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어 '창경원'으로 격하했듯, 총독부는 조선의 왕궁을 놀이터로 바꿔 버렸다. 인파가 전국에서 몰려들자 "집 파라 논 파라 딸 파라, 박람회를 리용하여 돈을 벌랴는 사람"도 많았고(1929년 6월 8일자) 지방 기생들까지 '상경(上京) 영업'을 하는 바람에 270여명이던 경성 기생이 350여명으로 늘었다.(1929년 8월 13일자)

그러나 조선일보는 박람회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1929년 7월 총독부가 "박람회 때 사람들 많이 다니라고" 경복궁 담 일부를 부수자, 파괴된 담장 사진을 사회면 상단에 크게 싣고 "아츰 저녁으로 동십자각(東十字閣)을 안고 고색이 창연하게 섯든 옛 궁뎐의 담이 헐리는 것도 섭섭하다면 섭섭한 것"이라고 쓴소리했다.(1929년 7월 4일자) 조선일보에선 박람회를 홍보하는 기사나 사진은 보기 어려웠다. 반면, 경남 함안면장이 "백성은 굶어 죽겟는데 구경을 어찌가나"라며 군청의 관람 권유를 거부했다는 뉴스(1929년 10월 1일자)나, 어느 공립 보통학교가 학부형들에게 "조선박람회를 안 보면 수치"라며 권고장을 보낸 것을 '몰상식한 짓'이라며 고발하는 기사(1929년 10월 11일자)는 챙겨 실었다.

또 1면 사설에선 "(박람회 이후) 조선인 사회의 불안정한 상태는 더욱 심하여질 것"이라며 "만주나 일본으로 떠나는 조선 인구가 격증하고, 형무소 안으로 쓸려가는 수인(囚人)이 격증하는 것은 박람회에서 과시한 훌륭한 시설과는 좋은 대조가 아니냐"고 신랄하게 썼다.(1929년 8월 29일자) 특히, 조선일보 기자이던 소설가 염상섭(廉想涉)은 경복궁 문과 누각에 색종이를 알록달록 덧발라 놓은 꼴을 둘러보고는 "박람회니 공진회니 하는 것은 모다… 조선 것을 하나씩이라도 없애는 회(會)가 아닌가?" 하고 직격탄을 날렸다.(1929년 9월 18일자) 마음 편히 즐길 우리의 박람회는 광복 이후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2년 4월 20일 개막한 '군사혁명 1주년 기념 산업 박람회'는 식민지 때 박람회로 능멸당한 경복궁을 개최 장소로 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