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그리스 재총선까지 연옥에 빠져 어중간한 상태로 심판만 기다리는 셈"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다음 달 17일 그리스의 재총선까지 연옥(limbo)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

24일 외신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로존의 괴로운 신세를 연옥으로 표현했다. 지옥도 천국도 아닌 어중간한 지경에서 닥쳐올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3일 밤(현지시각) 유로존 정상들은 벨기에에 모여 그리스발(發) 유럽 재정위기를 놓고 다음 날 새벽까지 5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그리스가 약속을 지키면서 유로존에 남기를 바란다"는 원론적 수준의 성명만 발표했다.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한 유럽공동채권(유로본드) 도입 문제도 특별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유럽공동채권은 유로존 국가들이 연대보증을 서서 각국이 동일한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다음 달 28~29일 정례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성장협약을 준비하고 유럽공동채권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혀 숙제를 다음 정상회의로 넘겼다.

결국 유럽문제는 그리스 재총선과 이후 열리는 정상회의를 지나야 큰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국제 금융시장은 불안 속에서 출렁이는 괴로운 한 달을 보낼 공산이 크다. 시장에선 예상대로 획기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 은행 크레디아그리콜은 "유럽은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장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 씨티그룹은 "그리스가 내년 1월 1일 유로존을 탈퇴하고 다른 유로존 회원국으로의 위기 전염이 불가피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리스의 결단을 촉구하는 정치적 압박도 계속됐다. 로이터는 이날 "유로존 정부들은 지난 21일 전화회의를 갖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대비해 개별적으로 비상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는 유로존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도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독일 언론들은 "유럽중앙은행(ECB)과 분데스방크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대비하기 위해 위기 대응팀을 구성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치적 해결책이 도출되지 않자, 시장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3일 유로화 가치는 22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유럽 주요 증시는 2% 이상 급락했다.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의 국채금리는 전날보다 올랐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날 "스페인이 긴급 재정자금과 유동성을 필요로 한다"며 "현재와 같이 높은 채권금리로는 더 이상 자금을 조달할 수 없으므로 ECB가 나서 조달금리를 안정화시켜 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