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디자이너 "어릴때 온갖 전위적 시도 해봤기 때문에…"

"제가 만난 한국 남자들은 무척 모던하고 섹시했어요. 아이돌 그룹 2PM, 배우 이정재…. 패션도 세련됐고, 얼굴마저도 다들 잘생겼더군요!"

"한국 남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귀에 익은 이름들이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2년 전 한국 행사에서 만났다는 연예인들의 이름이다.

이탈로 주첼리(Italo Zucchelli·47). 미국식 '실용주의 미니멀리즘(장식을 단순·최소화한 룩)'의 대표주자인 '캘빈클라인 컬렉션'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총괄 디자이너)를 8년째 맡고 있는 그가 최근 방한했다. 올가을 서울 청담동 플래그십스토어 오픈을 앞두고 24일 서울역 부근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글로벌 브랜드 이벤트 '월드 오브 캘빈클라인 2012'(World of Calvin Klein 2012 in Seoul)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3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상기된 얼굴로 "2010년 이후 두 번째 방한"이라며 "이번 방문에서 어떤 영감을 받게 될지 벌써 기대된다"고 했다.

'캘빈클라인 컬렉션'에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한국에서의 전체 캘빈클라인(속옷·진 등 전 라인 포함) 매출도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미디어아트 형식으로 캘빈클라인 가을·겨울 룩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이번 행사의 콘셉트도 한국의 전설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에 대한 오마주로 캘빈클라인 측이 직접 결정했다고 한다. 주첼리는 "한국 사람들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것에 대한 열망과 이해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크다"며 "한국 시장이 너무 저평가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이방인'으로서 캘빈클라인을 가장 미국적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너무 튀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중립적 디자인을 하는 것, 그리고 실용적이면서도 클래식하고 동시에 혁신적 디자인을 하는 것. 이게 바로 '미국적'인 거죠. 이걸 정교한 패턴과 과감한 색감, 품질 좋은 소재 등 이탈리아적인 해법으로 매년 다르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남성복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한 명인 그는 "요즘은 스포티한 정장이 대세"라고 했다. "딱딱한 느낌의 정장 대신 스포츠웨어에 가까운 재킷까지 등장하고 있어요. 공식적 자리나 비공식적 자리, 모두 어울려서 실용적이죠. 제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질 샌더' '캘빈클라인' 같은 미니멀리즘을 이끌어온 브랜드에서 일해온 그는 정작 어린 시절 미니멀리즘과는 정반대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고스족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게 치장하고 다녔고, 바지 위에 스커트도 자주 입었다. 어릴 때 온갖 전위적 시도를 다해봤기 때문에 지금 단순하고 순수한 걸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평소 짙은 색 청바지와 몸에 살짝 붙는 면 티셔츠, 딱 맞는 재킷을 즐겨 입는다는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패션을 연출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든지 패셔니스타"라며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같은 정형화돼 있지 않지만 고유의 스타일이 있는 전설적 아이콘들이 바로 이 시대 남성 패션의 이상향"이라고 했다. "저는 '밑위가 짧은 바지를 입어라' '바짓단을 어디까지 오는 걸 입어라' 이런 식의 조언을 절대 안 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입을 수도, 입어서도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