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의 세상읽기] 데이터 교수와 함께한 3주간의 '미래여행'

"미래학 40년 파고든 하와이대
교수 '지속성장·붕괴·변환사회·유교형'

30년 뒤 일어날 수 있는 모델 설정
思考의 확장 통해 세계 앞날 예견'

한국, K팝처럼 창의적 국가 되거나
아예 농경사회 전락할 수도' 경고"


하와이에서 '꿈 같은 여행'을 즐기고 있다. 와이키키 해변으로 밀려드는 흰 파도를 바라보거나 하나후마만(灣) 산호 사이를 헤엄치는 거북이를 쫓는 휴가가 아니다. 석학(碩學)들과 함께 하는 '미래여행'이다. 하와이대 미래학 워크숍은 7일 시작돼 25일 끝났다.

때는 앞으로 30년 뒤인 2042년. 정치학·종교학·도서관학·우주생물학·미래학·지질학자 분야의 다양한 두뇌들이 한국에서 온 기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화두(話頭)를 던졌다. 너무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우리의 장래를 함께 나눠보기로 한다.

첫 번째 미래―통일한국은 세계의 리더로 부상했다. 고갈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원전(原電) 개발에 뛰어든 한국은 프랑스와 이 분야 선두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 마침내 한국은 달(月)에 방사능폐기물 기지를 건설했다. 기자는 한국 에너지 신디케이트 멤버로 그곳에 초청돼 이것이 바람직한 미래인지를 놓고 토론했다.

두 번째 미래―에너지 고갈, 인구 감소, 젊은 노동력의 해외 유출로 한국은 벼랑 끝에 서있다. 암시장이 등장해 한국인들은 물물교환에 삶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것은 보드카 한 병, 낡은 안경 4개, 쇠사슬, 배터리, 군복처럼 쓸모없는 것들뿐이다. 이 물건들을 어떻게든 잘 바꿔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세 번째 미래―제삿날,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아버지가 홀로그램으로 자식들 앞에 나타난다. 하이테크 기술이 극에 달한 시대, 돈만 있으면 아버지의 뇌에 로봇 인체를 입혀서 되살릴 수 있다고 업체 관계자가 권유한다. 자연 수명(壽命)을 거스르는 게 윤리적일까, 모두가 고민에 빠진다.

네 번째 미래―남북이 연합체를 결성한 이후 대한민국은 유교적인 사회로 변한다. '위대한 지도자(Great Leader)'가 영도하며 갈등·미래는 보좌관이, 지역은 로컬 리더가 관장한다. 어느 날 회의에서 질문이 쏟아진다. 위대한 지도자의 임기를 제한해야 마땅한가, 이렇게 살기 어려운 시대에 북한에서는 배울 것이 없는가….

이 네 가지 시나리오는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지속적인 성장(Continued Growth), 붕괴(Collapse), 변환사회(Transformational Society), 유교형 사회(Discplined Society)를 상징한다. 각 시나리오는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가 만든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데이터 교수는 1970년대부터 '미래학'이라는 미지의 분야에 천착해온 인물이다. 한국인들에겐 앨빈 토플러가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이 분야의 태두(泰斗)로 수천 명의 제자를 배출했으며 팔순(八旬)을 앞둔 지금도 젊은이보다 더 젊은 발상을 하고 있다. 데이터 교수와 그의 제자들, 그가 초청한 교수들은 이런 시나리오와 이론, 실제의 변화를 보여주며 이렇게 묻는다. "우스운가? 그렇지만 이런 미래가 오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런 미래는 바람직한가, 아닌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고의 확장력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하와이대 해밀턴도서관 사서(司書) 데이비드 브라이어가 말한 '도서관의 미래'였다. 기술이 발전하면 도서관이 사라질 것같이 생각하는 청중에게 그는 폭소를 자아내면서도 가능할 것 같은 미래를 보여줬다.

"미래의 도서관은 더 확장될 것이다. 노숙자뿐 아니라 일자리를 잃은 대중에게 장소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독(Smart Dog·똑똑한 개)이 아이를 가르치려 출입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섹스로봇(Sex Robot)과 도서관에서 정사를 즐길 수도 있다!"

전혀 접하지 못했으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슈를 놓고 토론하는 사이 미국과 세계는 생각보다 더 빨리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절감했다. '예언(Predict)'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앞날을 '예견(Forecast)'하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딘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워크숍에 참가한 학자, 공무원, 연구소장, NGO 리더의 연령이 다양하다는 사실이었다. 팔순을 앞둔 노인부터 사십대 초반의 장년이 마치 공상(空想)소설 속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을 놓고 지적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다.

하와이의 화려한 풍광 속에서 3주간의 지적 호사를 누리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과연 신문의 앞날은 무엇이고 나의 앞날, 조국의 장래는 어떨까 하는 질문이 태평양의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밝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면서 데이터 교수가 산문(山門)을 나서는 제자들에게 고승(高僧)이 내려주는 화두같이 던진 마지막 말은 아직도 곱씹고 있다. "한국은 K팝의 유행에서 보듯 창의적인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아예 농경사회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고민하라. 그래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