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세계, 모호한 관계에서 찾은 삶의 의미

미학적 완숙과 미학적 도전.

일관된 예술관으로 40년 넘게 자신의 문학을 완성해 나가고 있는 60대 중견 작가와 패기만만한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소설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30대 젊은 작가의 작품집이 '2012 동인문학상' 5월 독회의 주인공이 됐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유종호·김화영·오정희·정과리·신경숙·김동식·김대산)는 25일 제6차 심사 독회를 열고 윤후명(66)의 단편집 '꽃의 말을 듣다'(문학과지성사)와 김유진(31)의 단편집 '여름'(문학과지성사)을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으로 올렸다.

'꽃의 말을 듣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추천은 체온의 차이는 있었지만 만장일치였다. 9편의 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은 한 예술가가 '의미의 완성'을 위해 적어내려 간 고행(苦行)의 견문록이다. 강릉에서, 후쿠오카에서, 아바나에서…. 단편마다 시공(時空)은 다르지만 오염되고 타락한 세계에서 근원적인 본질을 찾아 복원하려는 '불가능한'열정과 의지는 한결같다. 그 본질은 사랑과 순수에 대한 열망으로 대표된다. 심사위원들은 1967년 등단 이래 초지일관인 이 작가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자유로운 걸음으로 소요하면서 외면적 여행을 내면적 여행으로 탈바꿈" "수필과 허구, 독백과 환상이 어우러지면서 이 둘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진한 울음 같은 비애" "무의미하게 반복되며 소멸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 존재들과 인간 문명 속에 감춰진 생명의 리듬을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의 꽃을 피워" "여행 중인 인물이 연상의 사슬로 이어놓은 삶에 대한 성찰이자 통찰" 등이었다. 물론 "세계라고 하는 객체를 파악하려는 충동과 의지가 없는 자기 중심적 세계" "자기 반복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 강렬한 주관성이야말로 근대문학을 이끌어가는 욕망"이라는 반박이 제기됐다.

김유진의 '여름'은 서른 갓 넘은 이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삶은 정답과 오답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답안지가 아니라 규정되지 않는 모호한 관계의 연속임을 깨닫게 해주는 8편의 단편들이다. 젊은 세대가 지니는 관계 맺기의 두려움과 실패의 풍경들을 애틋하게 전달한다. 한 심사위원은 이 작가의 전략을 '무의미의 마이너스적 축조술'로 명명하면서 "암시적이면서 정갈한 언어를 통해 삶에 대한 태도를 환기하고 있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특유의 회화적 묘사를 통해 세상의 많은 일들이 모호한 채로 잊히고 만다는 사실을 투명한 시적 문장으로 전달" "고요한 정물화 같은 느낌" 등의 호평이 있었지만 "무의미의 병렬적 나열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각각의 무의미와 모호함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라는 비판도 맞섰다.

이 외에 심사위원들은 듀나의 단편집 '제저벨'(자음과 모음)과 김서령의 소설집 '어디로 갈까요'(현대문학)를 검토했다. 각각 "진화론적 세계관을 통해 과학이나 과학소설에서 미래를 향한 상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반성" "사회적 약자, 실패자, 변두리적 삶에 대한 위로"의 평가를 받았지만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