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IT 트렌드 선도하는 뉴욕] IT와 콘텐츠 천국의 만남… 뉴욕은 지금 실리콘앨리 2.0

지난 9일 미국 뉴욕 뉴욕대 스커벌 강당. 800개의 좌석이 빈틈없이 찬 가운데 뉴욕 IT 벤처모임인 '테크 미트업(Tech Mee tup)'이 열렸다. 20대 여성인 아스마우 아메드가 무대에 올라 대형 스크린에 지난 2년 동안 작업해온 사이트 '플럼 퍼펙트'를 선보였다.

"사용자가 자신의 얼굴을 올린 다음 가상으로 편리하게 화장을 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화장품을 자동으로 찾아주기도 하지요. 옷장에 있는 옷의 사진을 찍어서 액세서리를 착용해 보거나, 가구 사진을 올린 다음 다양한 커버를 씌워 보는 등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아메드의 시연이 끝나자 "조명이 달라지면 얼굴 톤이 달라지는 건 아닌가요" "어울리는 색상을 어떤 기준으로 찾아줍니까" 같은 질문이 관중석에서 쏟아졌다.

매달 한 번씩 열리는 '테크 미트업'에선 뉴욕의 최첨단 정보통신(IT) 창업자·투자자·개발자가 한자리에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뉴욕에서 IT 창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이 주를 이루는 '테크 미트업' 회원 수는 2008년 7500명에서 올해 5월 2만3200명으로 급증했다. 인터넷을 통해 배포하는 800장의 티켓은 2분 안에 매진되고,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수천 명이 이벤트를 시청한다.

◇'실리콘앨리 2.0'으로 성장하는 뉴욕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있는 보스턴에 집중됐던 IT 창업이 뉴욕으로 빠르게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실리콘앨리(Silicon Alley)'라 불리는 뉴욕의 벤처 창업 열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산업이 고전하는 가운데 시작됐으며, 지난 4년 동안 자금과 기술력이 함께 자라는 뉴욕의 가장 빠른 성장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실리콘앨리'는 '실리콘 골목'이라는 뜻으로 실리콘밸리의 널찍한 건물 배치와 대조되는 대도시 뉴욕의 빽빽한 고층 건물과 좁은 도로들을 빗댄 표현이다. 1990년대 중반 첫 번째 IT 창업 버블 때와 다르다는 뜻으로 전문가들은 '실리콘앨리 2.0'이라는 표현을 쓴다.

최근 미국의 비영리 산업 연구소인 '도시의 미래를 위한 센터'가 발표한 보고서 '첨단기술의 도시'는 실리콘앨리의 부흥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첫 연구물로 꼽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의 첨단 벤처 창업에 투입된 벤처캐피털은 2007~2011년 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의 벤처캐피털 규모는 11% 줄었고 실리콘밸리와 보스턴 지역의 투자도 각각 10%, 14% 감소했다. 뉴욕 벤처 투자의 급증세는 미국의 경제가 금융위기 이후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져 더욱 주목된다. 조사 대상 도시 중 벤처 투자가 증가한 도시는 뉴욕이 유일했다.

2007년 이후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아 뉴욕에서 만들어진 IT 벤처는 486개며, 벤처캐피털의 도움 없이 문을 연 회사까지 합치면 그 수는 1000개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5년 동안 이틀에 한 개꼴로 뉴욕에서 IT 벤처 기업이 탄생한 셈이다. 뉴욕주(州) 노동국 통계에 따르면 뉴욕시 첨단기업 관련 일자리는 2003년 3만3000개에서 올해 2월 5만2900개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4~5년 동안 속도가 빨라져 온 뉴욕의 벤처 창업 열풍이 IT 산업 자체의 체질 변화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를 부흥하게 했던 1세대 IT 열풍은 반도체·서버·컴퓨터 같은 하드웨어가 기초가 됐다. 컴퓨터·휴대전화·광케이블 등이 확장되던 시절에 벤처 창업은 애플·시스코·선마이크로시스템 등 하드웨어 기업들을 중심에 두고 확장했다.

그러나 전 세계 휴대전화 사용자가 전체의 80%인 59억명에 이를 정도로 하드웨어가 많이 보급된 지금, IT 창업은 이 기기들을 실생활에서 더 효율적이고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벤처캐피털 회사인 '퍼스트마크 캐피털' 래리 레니헌 이사는 "지금의 첨단 벤처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축된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한다.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활용법을 찾아내야 하는 IT 벤처들엔 패션·출판·금융 등 다양한 산업계 종사자가 모여 있는 뉴욕이 더 매력적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뉴욕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응용' 중시하는 새로운 트렌드와 결합

실제로 뉴욕에서 성공한 IT 기업 중 상당수는 일상생활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뉴요커들이 오프라인에서 해오던 재미있는 활동들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뉴욕의 가장 성공한 벤처 기업으로 꼽히는 인터넷 쇼핑몰 '길트(Gilt)'는 패션 브랜드들이 종종 여는 샘플 세일을 온라인과 결합한 모델이다. 한정된 시간(통상적으로 24시간)에만 특정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할인해 판매하는 인터넷 샘플 세일로 길트는 지난해 5억달러의 순익을 냈다. 2008년 직원 8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900명을 채용하고 있다. 이 중 20명은 뉴욕의 유명 백화점 '삭스 피프스', 또 다른 20명은 미디어 그룹 콘데나스트 출신이다. 케빈 라이언 길트 CEO는 "뉴욕에선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실리콘밸리보다 훨씬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업계를 기반으로 만화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코믹솔로지(Comixology)', 웹사이트와 휴대전화 앱(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해 주변 식당에서의 음식 주문을 한 번에 해결하는 '심리스(Seamless)'등 성공 궤도에 오른 뉴욕의 벤처들은 대부분 출판·요리·금융 등 뉴욕에 이미 구축된 산업을 토대로 삼는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뉴욕의 산업 체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노력도 뉴욕의 벤처 창업 붐을 이끄는 한 축이 됐다. 블룸버그는 뉴욕시 경제개발국을 통해 제너럴어셈블리·하이브·선샤인브롱크스 등 벤처 '인큐베이터' 다섯 곳을 지원했다. 스탠퍼드대나 MIT같이 응용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뉴욕에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전 세계 첨단 공대를 유치하기 위한 '응용과학 뉴욕시' 프로젝트도 뉴욕의 첨단 벤처 생태계를 개선할 블룸버그의 '작품'으로 꼽힌다.

☞실리콘앨리 2.0

실리콘앨리는 뉴욕의 첨단 정보통신(IT) 기업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 남부의 정보통신(IT) 기업 집약지인 실리콘밸리에 빗댄 표현으로 직역하면 ‘실리콘 골목’이란 뜻이다. 1990년대 중반에 뉴욕 맨해튼 소호 지역에 IT 벤처가 늘어난 시기가 ‘실리콘앨리 1.0’이라면, 요즘 IT 트렌드의 변화로 뉴욕시 전체에 IT 벤처가 빠르게 느는 현상을 ‘실리콘앨리 2.0’으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