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3위 은행에 공적자금 30조원 긴급수혈

은행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채 금리가 다시 급등하는 등 스페인이 시장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스페인마저도 구제금융행 열차를 탈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28일(현지시각) 자산규모 3위 은행 방키아에 190억유로(한화 30조원)의 공적자금 지원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시장에서 전망한 100억유로의 두배 가까운 규모였다. 이 여파로 방키아의 주가는 12% 폭락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스페인이 극도로 힘겨운 상황"이라며 "은행권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작년 투입한 45억유로를 합쳐 방키아에 들어가는 지원금은 총 235억유로(한화 35조원)로 스페인 역사상 정부 지원금으로 최대 규모다.

은행발 금융불안은 국채금리 급등을 촉발하고 있다. 이날 10년 만기 스페인 국채금리는 0.2%포인트 올라 연 6.5%를 기록했다. 작년 11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6.7%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채 금리가 연 7%를 넘어서면,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차환(借換·revolving)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본다. 아일랜드·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받을 확률이 커졌다는 뜻이다.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 가혹한 긴축조건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수요가 급감하는 등 경제가 망가진다. 소위 '낙인효과'가 발생해 국채시장에서 자금조달도 어려워진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규모 4위 스페인마저 구제금융 사태에 휘말리면 유로존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공산이 크다.

◇은행 파산 막기 위해 발버둥치는 스페인

라호이 총리는 이날 "은행권 위기로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과 지방정부가 무너지면 스페인 자체가 붕괴되기 때문에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방키아에 대한 지원금도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EU에 대해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EU가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대놓고 도움을 호소한 것이다.

스페인 은행이 골칫거리가 된 것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부실채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주택가격은 2007년 최고점에 비해 이미 25%가량 폭락했지만, 내년까지 15%가량 더 떨어질 것으로 소시에테제네럴은행이 전망하고 있다. 주택가격이 더 떨어지면 스페인 은행들은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기 어렵다. 작년 6월 말 현재 스페인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은 3230억유로(약 482조원)에 달하는데, 스페인 정부는 이 중 절반이 넘는 1750억유로를 이미 부실자산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도 결국 구제금융 가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시장에서는 이미 외부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또 스페인 금융관계자의 말을 빌려 "방키아를 위해 190억유로가 필요하다는 말은 바보 같은 소리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4000억유로 지원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BBC는 "스페인 은행권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며 "자칫 '좀비(움직이는 시체)'은행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스페인 은행구조조정기금의 잔액은 53억유로에 그쳐 방키아 구제금융 규모를 메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스페인이 그리스처럼 방키아에 국채를 지원해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ECB)의 자금을 받게 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 스페인은 EU의 압박에 밀려 은행들에 대해 자산건전성 심사(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는데, 시장에선 500억~600억유로의 추가 자금 수혈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금리가 올라가면 한계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