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거나 투항하거나… 작가, 인터넷에 대처하는 네 가지 자세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작업실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는 어렵다."

'인생수정'이라는 장편으로 전미도서상을 받은 작가 조너선 프랜즌(Franzen·53)의 소설 창작 10대 원칙 중 하나다. 소설가 김연수(42)에게도 인터넷은 '악마의 도구'.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집중력 저하와 몰입 방해, 그리고 극도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2012년, '접속'의 유혹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 21세기 소설가들이 인터넷에 대처 혹은 극복하는 자세는 무엇일까.

◇전면 저항

50대의 미국작가 프랜즌의 방식은 '전면적 저항'이다. 유선인터넷 시절에는 노트북의 랜선 입구를 진흙으로 막아버린 적도 있고, 요즘처럼 무선(Wi-Fi) 시절에는 노트북의 무선랜카드를 물리적으로 뽑아버리며 버텼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 미국 작가는 "인터넷은 모두 자아에 관한, 자아가 원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모든 뉴스와 정보, 나쁜 오락물들로부터 피난처가 될 책을 써내려면 일종의 '고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존

40대 초반의 작가 김연수와 정이현의 방식은 '조화로운 공존'이다. 인생의 대략 절반 정도를 인터넷과 함께 살아온 작가들의 '타협'이다. 김연수는 인터넷의 폐해를 3단계로 지적했다. ①웹서핑을 하는 동안은 독서를 하지 못한다. 독서를 안 한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한다는 뜻이다. ②그런데도 뭔가를 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③그뿐만 아니라 눈의 피로가 극심하다. 회복에는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늘 유혹이 이 깨달음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한때 김연수는 강제적인 방법을 써 본 적도 있다. 인터넷 접속 차단프로그램을 실행해 가령 8시간, 10시간씩 웹 접속을 물리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금단증상 때문에 결국 '투항'했다. 그때의 심정을 작가는 "미치는 줄 알았다"고 표현했다. 정이현 역시 "인위적으로 접속을 막아보려고 했더니 부작용만 심하더라"면서 "정보의 바다를 떠돌아다니면서 모티프도 많이 얻으니만큼 조화로운 공존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저항은 생각도 안 했다

그보다 10년 아래 작가들에게는 '저항' 자체가 뜻밖이다. 유년시절부터 인터넷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2012년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에 오른 젊은 작가 김유진(31)은 "(인터넷을 차단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안 해봤다"고 했다. 물론 원고 마감을 앞두고 엉뚱한 웹서핑으로 시간을 보내는 자신을 보면 한심하다고 했다. 그럴 때는 거꾸로 "물릴 만큼 한다"가 이 작가의 전략이다. 일주일 동안 매일 20시간씩 해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포털사이트에서 단어 하나만 봐도 모든 뉴스와 댓글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관심법'의 최종 심급 단계에 오른다. 이 상태에 오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감 원고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단편 소설 '여름'의 주 소재였던 체리나무도 인터넷에서 그 정보와 사진을 찾았다는 '인터넷 키드'다.

◇인터넷을 왜 해?

물론 아직도 육필로 소설을 짓고 있는 60대 이상 작가들에게는 후배들의 고통이 요령부득하다. 최인호나 김훈 같은 작가의 경우, 아예 인터넷 접속 방법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김훈은 스스로를 '인터넷 낙오자'라고 칭했다. 하지만 그는 "낙오자도 바쁘다. 인터넷만 바쁜 게 아니라 나도 책 읽고 자료 찾아보느라고 바쁘다"고 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매순간 습득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다들 계속 불안하다고 느끼는가. 어쩌면 의미 있는 지식과 지혜가 아니라 헛것으로 우리 자신을 채우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