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의 길 위에서] 신록 우거진 산책로에서 생명의 기운 마시는 '숲체원'
입력 : 2012.05.30 23:21
강원도 횡성 태기산 자락… 꽃보다 아름다운 새 잎 속
900m 데크 길 걷다 보면 어느새 꼭대기에 닿는 곳
갓난아기부터 할머니 장애 지닌 아이들까지
힘들고 지친 이웃들 모여 숲속에서 함께 자연 배운다
물 졸졸 흐르는 산 아래 계곡에서 데크 길이 시작한다. 나무 깔고 난간을 대 '편안한 등산로'다. 완만하게 산허리를 휘감아 오르는 길을 따라가자면 평지를 걷는 것 같다. 마음이 절로 넉넉해져서 길섶 들꽃들과 일일이 눈을 맞춘다. 키가 3m 가깝게 훤칠한 산철쭉 군락은 연분홍 꽃떨기가 많이 시들었다. 끝물이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 비탈 가득 싱그러운 연둣빛 새 잎들이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틔워주는 덕분이다.
졸참나무 신갈나무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 층층나무…. 활엽수가 매단 잎들은 하늘하늘 얇아서 하늘이 비쳐 보이는 반투명이다. 키 낮은 꽃나무들이 팔랑팔랑 내민 여린 잎은 영락없는 아기 손이다. "꽃보다 신록이 아름답다"는 말이 맞다.
숲이 녹음(綠陰)으로 짙어지기 앞서 이맘때면 강원도 횡성 태기산 자락에 들어앉은 '숲체원'을 찾아간다. 아름다운 신록을 이만큼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사철 짙푸른 편백과 삼나무 숲, 아직 잎이 성긴 잣나무와 낙엽송들 그리고 연록 활엽수 잎이 어우러져 짙고 옅은 녹색 잔치를 벌인다.
지난 주말 숲체원 데크 길을 걸었다. 900m나 이어지는 데크 길을 산책하듯 걷다보면 어느새 꼭대기에 다다른다. 태기산과 마주 보는 해발 920m 봉우리다. 바로 옆 청태산휴양림이나 경기도 양평 산음휴양림 숲속에도 데크 길이 놓여 있지만 200m도 채 안 되게 짤막하다. 정상까지 줄곧 데크 길을 깔아놓은 곳은 숲체원뿐이다.
산과 산 타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데크 길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산을 산 그대로 둬야지 자꾸 인공 구조물을 들이느냐고 탓할 것이다. 숲체원 데크 길엔 나름 깊은 뜻이 있다. 산과 숲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데크 길은 기울기가 4.5도밖에 안 돼 휠체어도 유모차도 쉽게 밀고 갈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갓난아기까지, 몸 불편한 장애인부터 아이 밴 엄마까지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을 누린다.
돌아 내려오는 데크 길에서 두 무리 아이들을 만났다. 경기도 광주 장애인학교 학생들과 과천 아동센터의 편부·편모·조손(祖孫) 가정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거나 다른 아이 휠체어를 밀어주며 참새처럼 조잘댔다. 간간이 왁자하게 웃음도 터뜨렸다. 선생님이 민들레꽃을 따 아이들 손목에 팔찌로 채워줄 때마다 "나도 나도" 하며 보챘다.
졸참나무 신갈나무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 층층나무…. 활엽수가 매단 잎들은 하늘하늘 얇아서 하늘이 비쳐 보이는 반투명이다. 키 낮은 꽃나무들이 팔랑팔랑 내민 여린 잎은 영락없는 아기 손이다. "꽃보다 신록이 아름답다"는 말이 맞다.
숲이 녹음(綠陰)으로 짙어지기 앞서 이맘때면 강원도 횡성 태기산 자락에 들어앉은 '숲체원'을 찾아간다. 아름다운 신록을 이만큼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사철 짙푸른 편백과 삼나무 숲, 아직 잎이 성긴 잣나무와 낙엽송들 그리고 연록 활엽수 잎이 어우러져 짙고 옅은 녹색 잔치를 벌인다.
지난 주말 숲체원 데크 길을 걸었다. 900m나 이어지는 데크 길을 산책하듯 걷다보면 어느새 꼭대기에 다다른다. 태기산과 마주 보는 해발 920m 봉우리다. 바로 옆 청태산휴양림이나 경기도 양평 산음휴양림 숲속에도 데크 길이 놓여 있지만 200m도 채 안 되게 짤막하다. 정상까지 줄곧 데크 길을 깔아놓은 곳은 숲체원뿐이다.
산과 산 타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데크 길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산을 산 그대로 둬야지 자꾸 인공 구조물을 들이느냐고 탓할 것이다. 숲체원 데크 길엔 나름 깊은 뜻이 있다. 산과 숲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데크 길은 기울기가 4.5도밖에 안 돼 휠체어도 유모차도 쉽게 밀고 갈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갓난아기까지, 몸 불편한 장애인부터 아이 밴 엄마까지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을 누린다.
돌아 내려오는 데크 길에서 두 무리 아이들을 만났다. 경기도 광주 장애인학교 학생들과 과천 아동센터의 편부·편모·조손(祖孫) 가정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거나 다른 아이 휠체어를 밀어주며 참새처럼 조잘댔다. 간간이 왁자하게 웃음도 터뜨렸다. 선생님이 민들레꽃을 따 아이들 손목에 팔찌로 채워줄 때마다 "나도 나도" 하며 보챘다.
숲체원은 '숲을 체험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공익법인 녹색문화재단이 복권 수익금에서 나온 '녹색자금'을 지원받아 숲으로부터 소외된 이웃을 숲으로 불러들인다. 가난하거나 장애를 지닌 어린이들을 며칠 먹이고 재우며 숲을 숨쉬게 한다. 공부에 짓눌린 아이, 스트레스에 전 어른을 숲의 푸름으로 어루만진다. 인터넷게임 중독과 산만한 주의력과 아토피를 다스리고, 숲으로 태교(胎敎)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3년 전 숲체원에 처음 왔을 때 임도(林道)를 잘못 들었다가 으슥한 산모롱이에 모여 있던 어른 아이들과 마주쳤다. 자그마한 텐트를 여럿 쳐놓고 놀던 아이들이 이방인에게 놀라 표정을 굳혔다. 모두 다운증후군 어린이들이었다. 함께 있던 엄마들도 당황스러워했다. 그것이 숲체원의 장애아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같은 아픔을 지닌 엄마들끼리 모여 아이들에게 자연을 숨쉬게 하려는 마음이 애틋하게 전해왔다.
꽃구경 가면 인파 속에서도 노부모 모시고 나온 가족이 유달리 눈에 띈다. 5월 초 태안 튤립축제에서도 지팡이 짚은 꼬부랑 할머니를 '젊은' 할머니와 중년 아주머니가 모시고서 꽃길을 다니고 있었다. 딸 삼대(三代)이거나 시어머니·며느리 삼대일 것이다. 늙은 아들도 쓰러질 듯 겨우 걷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튤립 구경을 시켜드리고 있었다. 노인이 돼버린 자식이 호호백발 부모를 챙기는 것만큼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까. 삶의 끄트머리에서 하는 효도(孝道)가 진한 효도이고, 그렇게 효도할 수 있는 것도 복이지 싶다.
숲체원은 늙은 자식이 늙은 부모 모시고 나들이하기에 딱 좋다. 부모님 손 잡고 느리게 데크 길 오르며 신록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을 들이마시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어린이에게 자연을 가르치기에도 제격이다.
숲체원은 프로그램 참가자 말고도 누구에게나 개방해왔다. 그러다 올 들어 인터넷 예약을 받아 하루 쉰 명씩만 들여보내고 있다. 두릅이며 고사리를 마구 따가고 계곡에서 고기 구워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숲체원 스스로 내세우듯 '힘들고 지친 이웃이 숲에서 하나 될 수 있는 장(場)'이 되려면 문을 더 넓게 열어야 할 것 같다.
3년 전 숲체원에 처음 왔을 때 임도(林道)를 잘못 들었다가 으슥한 산모롱이에 모여 있던 어른 아이들과 마주쳤다. 자그마한 텐트를 여럿 쳐놓고 놀던 아이들이 이방인에게 놀라 표정을 굳혔다. 모두 다운증후군 어린이들이었다. 함께 있던 엄마들도 당황스러워했다. 그것이 숲체원의 장애아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같은 아픔을 지닌 엄마들끼리 모여 아이들에게 자연을 숨쉬게 하려는 마음이 애틋하게 전해왔다.
꽃구경 가면 인파 속에서도 노부모 모시고 나온 가족이 유달리 눈에 띈다. 5월 초 태안 튤립축제에서도 지팡이 짚은 꼬부랑 할머니를 '젊은' 할머니와 중년 아주머니가 모시고서 꽃길을 다니고 있었다. 딸 삼대(三代)이거나 시어머니·며느리 삼대일 것이다. 늙은 아들도 쓰러질 듯 겨우 걷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튤립 구경을 시켜드리고 있었다. 노인이 돼버린 자식이 호호백발 부모를 챙기는 것만큼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까. 삶의 끄트머리에서 하는 효도(孝道)가 진한 효도이고, 그렇게 효도할 수 있는 것도 복이지 싶다.
숲체원은 늙은 자식이 늙은 부모 모시고 나들이하기에 딱 좋다. 부모님 손 잡고 느리게 데크 길 오르며 신록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을 들이마시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어린이에게 자연을 가르치기에도 제격이다.
숲체원은 프로그램 참가자 말고도 누구에게나 개방해왔다. 그러다 올 들어 인터넷 예약을 받아 하루 쉰 명씩만 들여보내고 있다. 두릅이며 고사리를 마구 따가고 계곡에서 고기 구워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숲체원 스스로 내세우듯 '힘들고 지친 이웃이 숲에서 하나 될 수 있는 장(場)'이 되려면 문을 더 넓게 열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