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人 / JW중외제약 이경하 부회장 "통념 깨고 서울 한복판에 연구소 차려 1조원 매출 올릴 신약 개발하겠다"

이공계 연구원들의 꿈은 가능하면 서울에서 가까운 기업 연구소에 취직하는 것이다. 연구소의 '마지노선'이 있다는 말이 그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연구소가 수원이나 용인, 파주보다 멀리 있으면 우수 연구원을 뽑기 어렵다고들 한다. 국내 대형 제약사들도 용인, 화성 일대에 연구소가 몰려 있다.

제약업계에 이 마지노선을 과감하게 돌파한 회사가 나타났다. JW중외제약은 26년간 유지하던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사옥을 매각하고 다음 달 8일 서초동 성우빌딩(구 현대시멘트 사옥)으로 본사를 옮긴다. 회사는 경기도 화성의 신약연구센터와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CMC연구센터까지 본사로 총집결시킬 계획이다. 국내 상위 20대 제약사 중 서울에 연구소를 두기는 처음이다. 서울에서는 화성연구소에 비해 임대료와 유지비가 두 배 이상 든다. JW중외제약은 "서울 연구소 시대는 이경하(李炅河·49) 부회장의 연구개발(R&D)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한다.

"미국의 바이오 벤처 중 본사와 연구소가 떨어져 있는 곳이 있습니까. 국내 제약사들이 크다고 해도 미국에선 벤처 수준입니다. 벤처가 R&D에 대한 의사 결정을 빨리하려면 당연히 연구소가 본사에 있어야죠."

29일 신대방동 본사에서 만난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에선 'R'(연구)만 강조하지 'D'(개발)는 뒷전이다"며 "제약업체의 D 인프라는 주요 대학과 병원인데 모두 서울에 있으니 R을 담당하는 연구소가 당연히 옮겨와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 없던 혁신 신약을 개발하려면 한 달에 한두 번 연구소에서 본사로 올라와 보고하는 것으로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의사 의견을 듣고 연구원 생각을 묻고, 또 그들끼리 의견을 나누려면 본사에 연구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회장이 말한 혁신 신약은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임상1상시험이 진행 중인 윈트(Wnt) 표적항암제 'CWP231A'다. 미국에서도 특허를 받은 이 약은 정상 세포를 암세포로 바꾸는 신경신호인 'Wnt 신호'를 억제한다. 1982년 Wnt가 암세포 형성의 주요 요인으로 밝혀진 이후 머크·노바티스 등 쟁쟁한 거대 다국적 제약사들이 항암제 개발에 달려들었지만, 개발 단계에 진입한 것은 JW중외제약이 처음이다. 곧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임상시험도 시작된다. 이 부회장은 "연구소가 서울로 옮기면 연구원이 임상 담당 의사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JW중외제약은 15년간 Wnt 항암제 연구를 했다. 지난해 매출 4300억원으로 업계 7위를 한 회사가 외국 제약사들도 포기한 분야에 그렇게 오래 매달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입사하면서부터 Wnt 프로젝트를 하다가 간부가 된 연구원도 "이제는 안 될 것 같으니 포기하고 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이 부회장은 "경영자가 그 말을 해도 연구원은 '내일이면 됩니다'하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은 실패율이 99%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99번 실패해봐야 한 번 성공할 수 있는 셈이죠. 그 정도 열정이 없으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신약을 만들 수 없습니다."

물론 시장에 대한 치밀한 계산도 깔렸다. 이 부회장은 "복제약은 물론이고 신약이라고 해도 남들과 비슷하면 수천억원을 들여 임상 2·3상에서 더 나은 효능을 입증해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며 "경쟁 대상이 없는 혁신 신약이면 임상1상 단계에서부터 해외 제약사와 손을 잡을 수 있으니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JW중외제약 측은 CWP231A가 상품화되면 발매 첫해에 최소한 전 세계 표적항암제 시장의 3%를 점유해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 과정에서 축적한 Wnt 신호 전달 경로와 관련된 원천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수익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분자가 작은 합성 화학물질이 인체 신호 단백질을 제어할 수 없다고 생각해 모두 바이오의약품으로 몰려간 것"이라며 "Wnt 항암제는 화학물질이라 바이오 의약품보다 가격도 훨씬 저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같은 방법으로 신호 단백질을 제어하는 후보물질 2만7000여종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무기는 스위스 로슈 계열사인 일본 쥬가이제약과 함께 국내에 세운 C&C신약연구소. JW중외제약과 쥬가이제약은 최근 창립 20주년을 맞아 연구소가 개발한 통풍치료제를 신약으로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세계적인 제약사인 로슈가 국제 기준으로 신약 가능성을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신약 개발을 위해 연구소 안에 임상연구센터도 세웠다.

이 부회장은 이종호(李宗鎬·82) 회장의 장남으로 '오너 3세'다. 그가 제약과 관계를 맺은 것은 성균관대 약학과에 들어가면서부터. 하지만 그는 "아버님 의견이 아니라 화학을 좋아해서 스스로 약대를 간 것인데, 정작 입학해서는 공부와 담을 쌓았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기말고사를 보러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누군가에게 인사를 해서 엉겁결에 따라 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당 교수였다는 것. 하도 수업에 들어가질 않아서 몰라본 것이다.

그의 뚝심이 발동한 것은 미 드레이크대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다. 첫 학기에 영어 원서 한 장 넘기는 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책을 오래 잡고 있었던 덕분에 시험 시간에 교과서 한 장 한 장이 그림까지 다 기억났다고 했다. 당시 지도교수는 이 부회장을 불러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서 1등이 아니었으면 부정행위를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종호 회장도 이런 이 부회장의 뚝심을 알기에 2000년대 들어 회사 업무를 완전히 맡겼다. 다만 "회사가 망할 때까지 기술 투자를 계속하고, 연수원 예산을 절대로 줄이지 마라"고만 부탁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은 아마도 R&D에 대한 집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