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돋친 선풍기… 파리 날리는 에어컨

청소기도 전력 소비량이 낮은 핸디청소기가 잘 팔린다. 핸디청소기는 한 손에 쥐이는 크기로 집 구석구석을 청소할 수 있는 진공청소기의 한 형태다. 소비 전력이 1000㎾인 일반 진공청소기 매출은 3%에 그친 반면 소비 전력 40~50㎾ 수준인 핸디제품은 35%나 늘었다.

전구도 전력 소비가 일반 제품의 70~80% 정도인 LED로의 쏠림이 심했다. 롯데마트에서 LED 전구 매출은 217% 늘었지만 일반 전구는 5% 감소했다. 절전형 밥솥도 1년 전보다 53% 매출이 늘었지만, 일반 밥솥은 9% 증가에 그쳤다. 절전형 밥솥에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정 온도를 유지하면서 전원을 차단해 소비 전력을 줄이는 기능이 있다.

◇각종 아이디어 상품 봇물

소비자들이 전기요금에 민감하게 움직이자 업체들은 절전형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마트는 업계 최초로 청바지에 쿨 소재인 '에에로쿨'을 넣어 통기·통습 기능을 강화한 '쿨진'을 내놔 두 달 만에 70%(3만7000장)를 팔았다. 롯데마트도 최근 내놓은 쿨 소재 여성 의류와 속옷이 큰 인기를 얻자 품목을 대폭 늘일 계획이다.

TV홈쇼핑에서는 쿨젤매트 등이 인기다. 쿨젤매트는 바닥에 까는 매트로 안에 젤리 형태의 열을 식혀주는 물질이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GS홈쇼핑 측은 "1년 전보다 매출이 40% 이상 크게 늘어난 데다 최근에는 전기요금 인상 우려가 있어 업체마다 작년보다 두 배 많은 물량을 구비해놓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르면 6월 말이나 7월부터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을 5~7%가량 올린다는 방침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임박하면서 가전(家電)상품의 판매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5월에도 때 이른 한여름 날씨가 계속됐지만 백화점·대형마트·TV홈쇼핑에서 에어컨 판매는 뚝 떨어지고, 대신 선풍기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에어컨은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대표적 가전제품이다. 에어컨 1대를 돌리면 선풍기 30~50대를 사용하는 것과 맞먹는 전력이 소모된다.

다른 품목에서도 절전(節電)형은 날개 돋친 듯 팔리지만 에너지효율 등급이 낮은 일반 품목은 판매가 감소하고 있다. 불황 속에 소비자들이 전기요금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자 업체들도 상품전략을 다시 짜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각종 절전형 아이디어를 담은 제품을 출시하고 마트들도 통기·통습 기능을 강화한 쿨 소재 의류를 자체 제작해 판매 중이다.

◇에어컨, 절전형도 안 팔린다

지난달은 한여름 날씨에 못지않았지만 대형마트 에어컨 매장은 예상을 깨고 썰렁했다. 대형마트 가전매장 직원들은 "기존에는 평일 하루 40~50명 정도 방문해 절반 정도의 고객들이 에어컨을 사갔지만 올해는 수요가 뚝 떨어졌다"면서 "주말에도 문의 자체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에어컨 판매가 최근 수년 내 최악"이라고 했다. 제철 가전인 에어컨을 매장 노른자 자리에 진열해 놔도 하루에 10대가 채 안 팔린다는 것이다. 대신 선풍기는 대박 상품 대열에 올랐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에서 5월 선풍기 매출은 1년 전보다 60~250% 늘었다. 반면 에어컨은 50%나 감소했다. 고가 가전 위주로 판매하는 롯데백화점에서도 에어컨 판매는 줄어 든 반면 초특가 기획 선풍기(2만9000원)는 준비한 2200대가 3일 만에 다 팔렸다. 신세계백화점의 선풍기 매출도 1년 전보다 40%가 늘었다.

올해 새로 나온 에어컨은 절전 기능이 대폭 보강된 인버터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외면받고 있다. 인버터 타입이란 주변 온도에 따라 한 개의 모터가 강약을 자동 조절해 바람의 온도와 세기를 조절하는 것. 두 개의 모터를 사용하는 기존 제품보다 절전 효과가 30%에 달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작년에는 에어컨 신제품 가격이 기존보다 50%나 비쌌음에도 잘 팔렸지만 올해는 전기요금 이슈가 터지자마자 손님이 뚝 끊겨 성수기인 6~7월에도 실적은 부진할 것 같다"고 했다.

◇세탁기·청소기·전구도 전기요금 아낄 수 있는 것만

선풍기·에어컨뿐 아니라 가전 전반에서도 절전형이 대세다. 대형마트들에서 드럼세탁기는 1년 전보다 매출이 6% 감소했지만 일반 세탁기는 오히려 5% 늘었다. 이마트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드럼세탁기는 에너지효율등급이 2등급이지만 일반 제품은 1등급"이라며 "세탁기 전체 판매량의 59% 정도였던 일반 세탁기 판매가 최근 부쩍 늘어 65%까지 올라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