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준 자문형 랩, 위험자산 비중 조절하며 안전운행 시동

요즘 손님들에게 공격적인 자문형 랩어카운트(자문사가 운용하는 맞춤형 자산관리계좌)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지수가 폭락했고, 이때 자문형랩이 큰 타격을 받으며 수익률이 급락한 탓이다. 자문형랩은 투자자문사에 큰 폭의 자율권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업종)의 선전 덕에 재미를 봤었지만, 이후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로 일부 상품이 아예 판매 중단될 정도로 고초를 겪었다. 상황이 열악해지면서 10조원에 육박하던 자문형랩 잔고는 어느새 5조원대로 '홀쭉'해졌다. 이래저래 위기를 겪고 있는 자문형랩이지만, 증권사별로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며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안전장치'를 부착해 수익률 추락을 막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등장하고 있는 자문형랩 신상품을 소개한다.

◇수성(守城)에 나선 자문형랩

최근 자문형랩 트렌드는 안전성이다. 대우증권의 한 관계자는 "요즘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중위험 중수익"이라며 "리스크를 관리하기 편한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자문형랩도 이와 비슷한 추세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안전성을 추구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삼성증권이 내놓은 U시리즈는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초저위험 서비스(U1)부터 고위험 서비스(U10)까지 선택을 하고, 그에 맞춰 삼성증권 운용역이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서비스다. 또 기존 자문형랩과 달리 자문사를 교체할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대부분의 자문사가 국내시장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절세 혜택이 가미된 글로벌랩 상품을 내놨고, 한국투자증권은 자체 개발한 모델로 자산 배분을 실행하는 아임유 스마트 랩 서비스를 출시했다.

상승기라고 판단되면 주식형 자산을 늘리고, 하락장에선 보수적으로 운용되게끔 하는 것이 특징이다. 부실 자문사들이 문제가 된 전력을 감안, 자문사 등급을 분류해 나가는 것도 최근의 경향이다.

우리투자증권은 2개 이상의 내부 운용역, 자문사에서 조언을 받는 멀티매니저랩을 판매한다. 스타일이 다른 둘 이상의 랩을 혼합해 안전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특화된 랩 상품을 내놓는 곳도 많다.

바이오산업에 50% 이상 투자하는 동양증권의 헬스케어랩이나 좋은 기업의 재발견을 통해 장기투자하면서 랩 수수료의 10%를 고객 명의로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SRI랩이 그것이다.

하나대투증권은 턴어라운드가 예상되는 종목에 투자하는 랩, 대우증권은 주도주에만 투자하는 브레인투자자문의 브레인랩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배준영 미래에셋증권 랩운용팀장은 "랩 계좌의 20%가 고객 투자성향이 가미된 맞춤형 계좌"라며 "고객 스스로 전체 그림을 짤 수 있다는 자문형랩의 진짜 장점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상승장에 대비하라

자문형랩의 본령은 공격성이다. 지난해 초 차화정 덕에 재미를 봤듯 올 초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전차(電車) 군단의 활약에 일부 자문형랩이 고수익을 냈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 편입비율이 40%에 달해 화제가 된 자문형랩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감에 급락하는 증시지만, 언제 갑자기 주도주가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이럴 땐 펀드보다 훨씬 적은 10여개 종목에 투자하는 자문형랩이 적재적소에 맞게 투자처를 바꾸며 수익률 관리하기에 용이하다.

개인별로 관리되는 만큼 운용 내역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리스 사태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며 "긍정적인 장세에 대비하기 위해 자문형랩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민병훈 한국투자증권 고객자산운용부 차장도 "자문형 랩은 안전띠를 달았다고 해도 주식에 투자하는 공격적인 상품이기 때문에 전체 투자 자산의 30~40% 이하로 비중을 조절해 분산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