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감독 SF대작, 선·악 경계선의 두 여배우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를 만든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30년 만에 SF영화를 선보인다. '프로메테우스'(7일 개봉)다. 스콧은 이 작품에서 시고니 위버가 열연했던 '에일리언' 시리즈의 주인공 '리플리'를 연상케 하는 강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외계 행성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으려는 '엘리자베스 쇼'(누미 라파스) 박사와 수십조달러를 들여 그의 연구를 지원하는 대기업 '웨이랜드'의 '비커스 메레디스'(샤를리즈 테론) 사장은 남자 캐릭터보다 강하고 똑똑하며 생존 본능도 뛰어나다. 할리우드에서 첫 주연을 맡은 라파스(33)가 쇼 역할을, '몬스터'로 아카데미와 베를린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은 테론(37)이 메레디스 역할을 맡아 연기 대결을 펼친다. 3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한 호텔에서 스콧 감독의 두 히로인 테론과 라파스를 만났다.

테론이 연기한 메레디스는 쇼에 맞서 기업의 이익을 지키려는 역할이다. 그는 동성 연인을 위해 살인을 하는 창녀('몬스터')나 백설공주의 심장을 얻어 영생(永生)하려는 왕비('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등에 이어 또 악역을 맡았다. "왜 착한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느냐"고 묻자 테론은 "실제로 사람들이 착하게만 살아가느냐"고 되물었다.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상처받고 불안해하며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자아도취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나쁜 짓도 하고 산다. 오히려 바르게만 행동하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너무 '영화적'이다"고 했다.

테론과 라파스는 10대 중반에 '에일리언 1'을 봤다고 한다. 라파스는 "섹시하게 보이려 하고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려는 여성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서의 여성을 그때 (에일리언에서) 처음 접했다"고 했다. 테론도 "사춘기 때 에일리언을 보고 '리플리'의 캐릭터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기자가 "그러면 영화에서 왜 그런(리플리 같은) 역할을 더 자주 맡지 않았느냐"고 하자 테론은 방 안의 남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사람들이 안 보러 오니까"라고 했다. "할리우드에선 모든 게 철저히 돈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생기죠. 이번 영화가 성공하길 바라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라파스는 스웨덴판 '밀레니엄' 3부작과 유럽의 예술영화 여러 편에 출연했지만 할리우드에선 신인에 가깝다. 그는 "이 영화에 캐스팅되기 전에는 출연 여부와 상관없이 리들리 스콧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건 조연으로 등장한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2011) 단 한 편뿐이었지만 결국 1억3000만달러(약 1500억원)짜리 '프로메테우스'의 주연에 캐스팅됐다. "막상 캐스팅되고 나서는 첫 SF 출연이 무서웠어요. 아무것도 없는 그린 스크린(화면을 합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녹색 스크린) 앞에서 상상만으로 연기할 생각을 하니…. 다행히 스콧 감독이 우주선부터 에일리언까지 모든 걸 만들어놨기 때문에 현실로 받아들이고 연기할 수 있었죠."

두 배우 모두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복합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라파스는 "가끔 뻔한 로맨틱 코미디영화 제의가 들어오긴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 여러 겹의 삶의 질곡을 가진 캐릭터가 좋다. 그런 것이야말로 내가 싸워 얻어낼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테론은 더 직설적이었다. "어차피 이 바닥은 내가 기대하고 예상한 대로 되는 게 없기 때문에 흥행이나 작품성 같은 거 따져봤자 소용없어요. 난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캐릭터를 맡고 싶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내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볼 수 있는, 계산된 연기는 하지 않아요. 전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가 아니라 (배를 가리키며) 여기(gut)로 연기하는 배우입니다." '배'를 가리키는 영어 'gut'는 '근성' '직감'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