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프랑스 파리에서 숨졌다. 19세기의 종언과 20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죽음이었고, 삶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자의 일생이었다. 그 자신 세기말을 장식한 스타일리스트였다. 검은 양복에 단정한 수염이 점잖은 남성의 드레스코드이던 시절, 그는 장발을 하고 양복 단춧구멍에 초록색 제비꽃을 꽂고 다녔다고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 진지함에 대한 조롱이었다.
1890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주류 비평가들은 이 잘난 예술지상주의자를 융단폭격했다. 그중에는 "폼잡고 싶은 얼간이가 쓴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한 위험한 작품"이라는 인신공격도 있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화가 바질이 그려준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외모에 눈을 뜨고, 쾌락과 방탕의 길을 걷는다. 추문(醜聞)과 노화(老化)의 짐은 초상화에게 짊어지게 하고, 자신은 열락의 세계에 자발적으로 투항하는 것이다. 그레이에게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인물이 헨리 워튼 경. 자신이 버린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잠시 괴로워하는 그레이에게, 특유의 궤변으로 정당성을 마련해준다. 뒷골목 배우였던 소녀의 자살 역시 하나의 연기였을 뿐이라고. 이미 죽은 이상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바람직한 것은 젊음과 아름다움뿐이라고.
지난번 '101 파워클래식' 선정도서였던 '파우스트'와 비교하는 독서도 흥미로울 것이다. 노쇠한 파우스트 박사나 젊은 도리언 그레이나 둘 다 영혼을 팔아넘긴 존재라는 것은 공통점. 하지만 각각 '불완전한 인간의 완성'과 '예술의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차별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