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44] 한강 얼음 썰어 판 ‘천연빙 회사’

1935년 경성(京城·서울)에 '얼음 공황' 비상이 걸렸다. 여름 필수품인 얼음의 비축량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당시 한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한강·대동강 얼음을 톱으로 썰어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용 얼음으로 썼는데, 겨울 날씨가 너무 포근한 '변태적 괴후(乖候)'(1935년 2월 1일자)가 지속되는 바람에 얼음을 제대로 채취해 놓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한여름 동안 더위에 목마른 경성 시민의 입에서 녹아 버리는 어름은 경기도 위생과의 조사에 의하면 약 2만3천톤이라는 놀라운 수량'이나 되었으므로 얼음 부족을 염려한 경기도 위생과는 대책으로 새로운 '합동(合同)빙(氷)회사'를 창립시켰다(1935년 7월 19일자).

당시 경성의 얼음 수요 중 1만t쯤은 강에서 채취한 '천연빙(天然氷)'으로, 나머지 1만3000t은 3개 제빙회사에서 생산한 '인조빙'으로 조달했다. 1만t의 천연 얼음을 여름에 쓰려면 겨울에 1만9000t쯤을 채취해야 했다. 저장 중 녹기 때문이다(1935년 4월 3일자). 얼음값이 공급량에 따라 들쭉날쭉했기에 신문은 겨울마다 '얼음 수확' 상황을 벼농사 풍년·흉년 챙기듯 취재해 보도했다. 천연 얼음들은 중소 빙과류업자들이 '아이쓰 꾸리무(아이스크림)'나 '아이쓰 케이키'를 만들 때도 사용됐다. 얼음에 소금을 뿌려 영하의 온도를 얻는 가정용 아이스크림 제조기도 등장했다(1937년 7월 20일자).

한강 얼음 채취는 아무나 하도록 허락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엔 국가에서 얼음을 채취해 빙고(氷庫)에 저장해 놓았다가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눠줬다지만, 1920년대엔 기업들이 한강 얼음을 따냈다. 그것도 관청의 허가를 받은 회사만 할 수 있었다. 1920년대 경성에서는 조선천연빙·경성천연빙 양대 회사가 봉이 김선달식 '강물 얼음' 판매로 큰돈을 벌었다(1924년 12월 27일자). 경성의 천연 얼음 판매를 독식하고 있는 채빙업자들의 폭리에 대해 비난이 많자 경의선을 통해 안동현(安東縣·지금의 단둥시)으로부터 두만강 얼음이 경성으로 들어와 얼음값이 하락하기도 했다(1924년 8월 6일자.) 얼음의 소매 가격은 한 관(貫·약 3.75㎏)에 십전(약 2000원)가량 됐는데 폭염이 밀려와 수요가 급증한 1938년엔 '근수(무게)를 속여 팔아먹는 못된 어름 장사들' 수십 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1938년 8월 11일자).

한강 얼음을 썰어내는 일은 광복 후에도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6·25전쟁 중이던 1953년 1월 19일 발간된 조선일보에도 '한강의 채빙' 사진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