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 국민이 순국선열 기리며 양귀비꽃 다는 英 포피데이… 그런데, 대한민국 현충일은

국민들이 원하는 만큼 돈을 넣고 양귀비 조화를 가져가면, 그 수익이 전쟁미망인·고아·상이용사를 돕는 데 쓰인다. 여기에 착안해 우리 국가보훈처도 2005년부터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당신의 나라 사랑이 대한민국을 키워간다'는 뜻으로 푸른 나무 그림에 태극 열매와 비둘기 등을 담았다. 영국인들이 너도나도 붉은 양귀비 조화를 달고 다니면서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회적 예우풍토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3년 전 영국 런던에 갔을 때 시내 곳곳에서 붉은 양귀비꽃을 보았다. 빨간 양귀비 조화(造花)를 단 런던의 택시들이 도로를 누볐고, 검은 정장에 붉은 꽃을 단 신사·숙녀들이 거리를 메웠다. 종이로 만든 양귀비 조화는 영국·캐나다·호주 국민들에겐 애국심의 상징이다. 우리의 호국보훈의 달이 이 나라에선 11월이고, 1차 대전 종전 서명일인 11월 11일을 '포피데이(poppy day·양귀비의 날)'라 부르며 우리처럼 현충일 행사를 벌인다. 영국 국민들은 11월 한 달 내내 양귀비 조화를 달고 다닌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양귀비가 순국선열의 피를 상징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존 맥크레이와 모이나 마이클이라는 여성이 주고받은 시(詩)가 계기가 됐다.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줄줄이 선 십자가들 사이에/그것은 우리가 누운 곳을 알려주기 위한 것…', '오! 플랑드르 들판에 잠든 그대여/다시 일어나기 위해 기분 좋게 잠드소서…' 답시를 발표한 이 여성은 참전 군인을 기리는 의미로 붉은 양귀비 꽃을 옷에 달고 다녔다. 이 꽃을 판 돈으론 기금을 마련해 전쟁에서 돌아온 제대 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 재향군인회가 이 운동에 대대적으로 동참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6일 현충일에도 이 배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캠페인 첫해에 20만개로 시작한 배지는 작년 67만개를 제작할 정도로 양적으로는 늘었지만, 아직 국민들 의식 속에 자리 잡지 못했다. 재작년 보훈처의 설문조사에서도 나라사랑 큰나무에 대한 국민 인지도는 32.9%에 불과했다. 국민의 3분의 2 가까이는 아직도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셈이다. 영국 포피데이에 만발했던 양귀비를 생각하면 한국의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는 너무 초라한 신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