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만든 IT 융합 병원, 세계 의료계 聖地 되다

경기도 성남의 분당서울대병원에는 환자 차트가 없다. 인쇄된 처방전이나 검사지도 없으며, 엑스레이 등 의료영상 필름도 없다. 모든 게 전자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의료진은 병원 밖에서도 스마트폰으로 환자 진료 정보와 CT·MRI 영상 등을 볼 수 있다. 의사들은 해외 학회에 가서도 환자 상태를 즉시 점검하고 즉각적 처치를 내리곤 한다. 수술받을 환자들은 수술 과정 그림과 사진이 담긴 아이패드 화면을 보면서 설명 듣고, 수술 동의서에 전자 서명한다. 수술 후에는 병실에 누운 채 수술 경과를 알 수 있는 사진을 본다. 모든 게 IT로 시작해 IT로 끝난다.

국내 대표적인 IT 융합 '디지털 병원'인 분당서울대병원을 이끄는 인물은 정진엽(55) 원장이다. 그는 "높은 수준의 한국 의료기술과 IT 강국의 장점을 접목한 미래형 병원을 만들고 있다"며 "매년 20여 개국의 보건의료 전문가 수백명이 성지(聖地) 순례하듯 우리 병원을 들러 IT시스템을 견학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2008년 임기 2년의 원장직을 맡은 이후 이번에 3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6년 '장기집권'은 역대 서울대 산하 병원장 중 최초다.

그는 "IT 갖고 벌인 일이 많으니 마무리 지으라는 뜻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소아정형외과가 전공으로, 지금까지 뇌성마비 환자의 보행 교정을 위한 하지 수술을 5000여건 했다.

병원의 모든 병동에서는 마치 미국 첨단수사 드라마 CSI를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매일 연출된다. 의료진이 회진할 때마다 55인치 초대형 터치 스크린에 환자의 모든 기록과 영상을 띄워 놓고 손으로 당겼다 폈다 던졌다 하며 환자 상태를 일시에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때론 이런 방식으로 환자 가족들에게 경과보고 프레젠테이션이 이뤄진다.

정 원장은 "IT 병원 하면 의사들이 환자 얼굴은 안 보고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는 줄 아는데, IT 기술을 발전시키면 진료 효율성을 높여 환자들과 더 효율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입원 환자들은 고유의 바코드가 담긴 전자 태그를 손목에 차는데, 투약이나 주사, 검사 등을 할 때마다 의료진의 처방 바코드와 환자의 것이 일치하는지 전자장비로 체크된다. 불일치 시 자동으로 경고문이 뜬다. 정 원장은 "IT 기술이 의료 과오나 약화(藥禍) 사고를 예방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작년 미국의 의료정보화 평가기관으로부터 가장 높은 등급의 인증을 받으며 '세계 최고 IT병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내년 3월에 개원할 암(癌)·뇌신경병원의 최첨단 IT 시스템이 완성되면 본격적으로 의료-IT 융합 상품 수출에 나설 것"이라며 "의료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