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앞둔 女시인은 말하네 "고통, 네 덕에 여태 살았다"

"이 나이 되니까, 죽음이 별것 아닌 것 같아요. 다가올 죽음 앞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약한 소리 하지 않고 끝까지 마주 서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또렷했다. 올해 여든일곱. 예술원 회원인 홍윤숙 시인이 새 시집 '그 소식'(서정시학)을 펴냈다. 등단 이후 50년 동안 펴낸 17번째 시집. 책 머리 시인의 말에는 '내 생에 마지막 시집'이라고 적었고, 육성으로는 "오래 산 사람이 생을 돌이켜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라 생각해 달라"고 했다.

표제시 '그 소식'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날 아침 까치 한 마리/ 파란 사철나무 가지에서/ 유난히 싱그럽고 시끄럽게 우짖고/ 요란스레 새벽 창 흔드는 바람 소리 들리더니/ 그 소식 싱그러운 풋사과 향기처럼 날아왔다(…)'

시인은 1925년 평북 정주 출생. 공포·궁핍·수탈·혼란의 유년과 청년시절을 살아왔다. "10대 후반에 치러낸 2차 대전, 스무살 가장으로서의 자립, 해방의 소용돌이와 혼란, 마침내 6·25"등이 대표적이다. 삶은 고통과 동의어였다. 하지만 아흔을 앞두고 시인은 고통을 삶의 의미 중 하나로 품는다. "그 자체가 연단(鍊鍛)과 정화의 힘으로 인간을 단련시키고, 성숙과 성장으로 이끌어가는 불"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고통을 참아내지 못하는 현대사회가 안타깝다. 그런 차원에서 문학은 필수적이다. "고통을 정시하고 대결하면서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문학적 의지이며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 소식'은 이렇게 맺는다. '이제 너희 길 무지개로 열렸으니/ 그 길로 가면 된다 달리기만 하면 된다/ 날마다 가슴죄며 기다리고 빌며/ 문 밖에 서 있던 나도/ 그만 안으로 들어가 시린 발 녹여야겠다// 싱그럽고 시끄럽게 우짖는/ 까치 한 마리 날아가는 저/ 겨울 숲 바라보며…'

한국여류문학인 회장, 한국 시인협회장 등을 지냈고, 대한민국 문화예술 문학부문상, 서울시 문화상, 3·1문화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