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불황… 수입 화장품 매출 6년 만에 꺾여

한국 시장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던 수입 화장품들의 급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고가의 수입 브랜드들은 주요 백화점에서 매출이 감소하고 국내 브랜드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지갑이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국내 업체들이 내놓은 중저가 제품에 대거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되면서 관세가 인하됐는데도 오히려 가격을 올리는 등 '배짱장사'를 해온 일부 업체들은 최근 영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들은 한방·발효·냉장보관 화장품 등 한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시장탈환에 나섰다.

◇수입화장품, 6년 만에 매출 감소

에스티로더·크리니크·랑콤·키엘 등 수입브랜드들은 올 1~5월 주요 백화점에서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26% 감소했다. 지난 5년간 이 브랜드들은 최대 200%까지 매출이 성장했고 실적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최근엔 성장세가 주춤하더니 백화점 매출 1위 자리도 국내 업체에 내주고 있다. 지난 5월 백화점 3사의 화장품 매출을 조사한 결과 아모레퍼시픽의 한방(韓方) 화장품브랜드 '설화수'가 1위에 올랐다. 백화점 매출 1위를 번갈아 다투던 P&G사의 SK-Ⅱ와 로레알그룹의 키엘은 2~3위로 내려갔다. 로레알그룹의 대표 브랜드 랑콤, 100만원대 제품까지 나와 고가화장품의 대표격으로 불리던 시슬리, 20초에 하나가 팔린다는 '갈색병'(보습에센스)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에스티로더도 죄다 매출 순위가 뒤로 밀렸다. 국내 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5월 황금연휴를 맞은 중국·일본 관광객들이 국내 브랜드 제품을 대거 사간 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먹히던 수입브랜드의 고가정책이 요즘엔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격 대 성능 따지는 소비자 늘어

수입 화장품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황이다.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선 자동차 연비(연료소비효율)와 비슷한 개념인 '가성비'(價性比·가격대비 성능)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한불화장품 정해영 팀장은 "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소비자들은 브랜드 파워보다는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게 된다"며 "제품의 종류를 막론하고 무게나 용량에 따른 가격을 비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수입 화장품이 주춤하는 사이 국내 업체들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연평균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타 소비재 상품군이 3~4% 성장에 그친 것과 비교된다. 화장품 시장을 키운 주역은 중저가 화장품 전문숍들로, 최근 3년간 평균 37%씩 성장했다. 작년 시장규모가 2조5000억원에 달해 전체 화장품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중저가 브랜드숍인 더페이스샵·미샤·이니스프리는 작년 영업이익률이 10%를 넘었다.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도 1만원이 안 되는 '반값 화장품'을 내놓았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고가 브랜드와 비교해도 품질은 비슷하고 가격은 10분의 1에 불과한 실속형 제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수입 화장품 업계가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면서 백화점 판매에 주로 의존하는 점도 실적 부진의 주요인이다. 지식경제부 집계결과 올 들어 국내 백화점 3사의 1인당 구매건수와 구매단가는 모두 1년 전보다 하락했다.

반면,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백화점 외에도 중저가 브랜드숍, 방문판매, 온라인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1위 업체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매출의 3분의 1이 방문판매를 통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