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이 집세 고민… 만화·현실 합치니 성공"

올 상반기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계의 가장 큰 화제는 '어벤져스'의 흥행 돌풍이었다. 한국에서만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올 상반기 국내·외국 개봉작을 통틀어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역대 세계 흥행 순위에서도 아바타·타이타닉에 이어 3위에 오른 것. 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든 제작사는 미국 만화(코믹)의 본가(本家)로 유명한 '마블'이다.

현재 디즈니사 소유인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스파이더맨,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판타스틱4 등 8000개에 달하는 만화 캐릭터를 보유한 미국 최대 코믹북 회사로 만화책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업(완구·스티커 등) 등을 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마블의 수석부사장, 편집자, 작가이자 인력채용까지 맡고 있는 C B 세블스키(Cebulski·41)가 중소기업청과 KOTRA가 개최한 한국 미디어·콘텐츠 마켓(KMCM)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세블스키 부사장은 먼저 '마블'의 성공 요인으로 "1960년대 마블의 중흥기를 이끈 스탠 리는 언제나 '창 밖의 세계에 눈을 돌려라'라고 했다. 마블의 세계는 허구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기반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마블은 '만화책은 어린이들이 보는 유치한 출판물'이라는 편견을 깼고, '현실 반영'이 바로 그 길이었다"는 것이다.

마블의 지난해 매출액은 4억1300만달러(4848억원).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선 '원소스 멀티유즈'(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판매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이 회사를 꼽는다. 세블스키 부사장은 "한국 애니메이션·캐릭터 업체들의 최대 숙제가 '원소스 멀티유즈'이다"라며 조언을 구하자 "우리는 영화나 게임을 만들 때 융통성을 발휘한다. 매체 특성에 따라 캐릭터의 초능력이나 의상 같은 게 바뀌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캐릭터의 심장부가 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스파이더맨'은 그의 의상이나 '끈끈이' 때문에 매력적인 게 아니라 그도 연애와 학업, 집세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 청년이란 데 있어요. 게임이나 영화, 심지어 스티커를 만들어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사는 수퍼 히어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죠."

그는 이어 "한국에선 (어른과 아이 모두를 대상으로 삼는 마블과 달리) '뽀로로'처럼 어린이 전용 캐릭터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또 "마블사에는 중국·일본·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출신 아티스트들이 있고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도 있는데 한국에서 교육받고 능력을 다진 한국인 아티스트는 없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만화보다는, 돈을 상대적으로 더 잘 버는 게임산업에 더 많이 가 있는 듯하다"며 '인재(人材) 풀'의 문제도 지적했다. "만화 작가나 아티스트로서 성공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당신이 아는 것에 대해 쓰고 그리면 됩니다. 대공황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자라난 마블의 창립자들도 그들이 어릴 적 겪은 어려움과 함께 그 속에서 꾼 꿈을 집어넣어서 성공했거든요."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됐느냐"고 묻자 세블스키 부사장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블 코믹북과 일본 만화책을 끼고 살았다. 미술 학원에도 가봤는데 그림 그리는 데 영 소질이 없어 아티스트는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마블과 일본 만화를 결합하고 싶어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영어 강사를 하면서 3년간 살았다"고도 했다. "혹시 당신도 오타쿠(만화나 게임 등 한 가지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가 아니냐"고 하자 그는 "맞다, 난 '긱'(geek·괴짜)이자 '오타쿠' 맞다. 그래서 결국 내 꿈속에서 살 수 있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