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대형 마트 강제 휴무

몇년 전 영국 보건 당국은 병원들이 응급실 환자를 일정 시간 안에 반드시 치료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응급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환자들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새 규정을 지키려고 편법을 썼다. 환자를 곧바로 응급실 명단에 올리지 않고 병상(病床)이 빌 때까지 앰뷸런스에 실린 채로 대기시켰다. 결국 환자 대기 시간은 달라지지 않았고, 앰뷸런스가 병원 주차장에 묶이는 바람에 애꿎은 응급환자 수송망에 차질이 생겼다.

▶배우 미아 패로는 뉴욕 센트럴파크를 내려다보는 방 열한개 짜리 호화 아파트에 산다. 이 집 월세는 2800달러, 주변 시세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 가수 신디 로퍼는 몇년 전 집주인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뉴욕 아파트 임대료를 월 3250달러에서 989달러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웃들은 월세 1만달러를 내는 고급 아파트였다. 모두 뉴욕시의 임대료 규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뉴욕시는 집주인이 집세를 함부로 인상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서민과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책이다. 그 혜택을 엉뚱하게도 패로나 로퍼 같은 유명 연예인과 펀드매니저, 부자들이 보고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대개 오래전부터 뉴욕 고급 아파트에 붙박이로 살고 있어서 집세가 사실상 묶여 있다. 사람들이 이사를 꺼리는 현상이 번지면서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젊은 층과 서민들만 어려워졌다.

▶일요일인 그제 전국 대형 마트와 기업형수퍼마켓(SSM) 가운데 72%가 문을 닫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조례를 만들어 월 두 차례 의무적으로 문을 닫게 하면서다. 갈수록 짜부라지는 재래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려보려는 조치다. 당장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농협 하나로마트였다. 대도시 하나로마트 주변엔 교통 체증까지 생길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하나로는 농수산물 매출 비중이 51%를 넘어 강제 휴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 영업 제한의 혜택이 재래시장과 골목 상권에까지 흘러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영국의 응급환자 처치 규정과 뉴욕시 임대료 규제는 좋은 의도로 짜낸 아이디어지만 역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정부와 정치권이 시장 작동원리를 무시한 채 의욕만으로 정책을 밀어붙일수록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기 쉽다. 대형 마트 규제도 마찬가지다. 재래시장의 쇼핑 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지지 않는 한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대형 마트에 세든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걱정도 크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