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석달째 내림세… 정유업계 "2분기는 재앙"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거뒀던 국내 정유업계에 올해는 실적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3개월째 내림세를 이어가며 손실은 날로 확대되는 추세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수요 부진도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업계에선 '2분기는 재앙'이라는 한숨 섞인 한탄이 나온다.

현대오일뱅크가 지난 4일부터 예산을 긴축하고 출근시간을 앞당기는 등 국내 4대 정유사는 비상대책 시행에 들어갔다. 한 정유사 직원은 "연가보상비를 아끼기 위해 회사에서 휴가를 권장하는 형편"이라며 "직원들 사이에 '올해 성과급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하락에 정유사 손해 커져

정유사 실적악화의 주요인은 국제유가 하락이다. 3월 중순 배럴당 124달러까지 올랐던 국제유가는 현재 30달러 가까이 급락해 100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지난 8일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된 두바이 원유 가격은 배럴당 96달러(현물가격 기준). 한 달에 10달러씩 빠진 셈이다.

유가 하락은 정유업계엔 치명타다. 정유사들은 중동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으로 판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배로 운송해 정제하다 보니 매입에서 판매까지 한두 달 시차가 생긴다"며 "최근 들어선 중동에서 매입할 때 원유 가격보다 팔 때 휘발유 등 제품가격이 낮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주로 들여오는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4월 말~5월 초 배럴당 115달러 수준을 나타냈지만, 이달 들어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110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비쌀 때 구입한 원유를 정제까지 하고서도 구매원가보다 싸게 팔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호실적을 보인 석유화학 부문도 올 들어선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제품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원유 정제과정에서 생산되는 석유화학 기초원료 '나프타'가 대표적이다. 나프타 가격은 3개월 만에 40달러가량 떨어지며 지난 8일 80.45달러로 주저앉았다.

윤활유 부문도 경쟁이 치열해지며 지난해만큼의 이익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부턴 환율까지 오름세로 돌아서 원가 부담까지 커지는 추세다.

◇현대오일뱅크 상장 연기될 듯

유가가 급등세를 보이다 금융위기 영향으로 급락세로 돌변, 정유사들의 실적이 고꾸라졌던 지난 2008~2009년과 같은 모습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업황이 침체에 빠지면서 투자 등 향후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올여름 기업공개를 추진하던 현대오일뱅크는 상장 연기를 검토 중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증시 상황 등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기업공개를 미룰 수 있다"며 "서두르기보다는 제값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정유사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정유사 관계자는 "법인카드 사용을 줄이라던가, 불필요한 자문 수수료 등 비용 감축 지시가 내려오고 있다"며 "비용 청구 절차도 깐깐해졌다"고 말했다.

희망 섞인 관측도 있다. 유가가 하향 안정화되면 경제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영국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에 접근하면서 경기가 얼어붙기 시작했다"며 "유가가 어느 정도 떨어지면 수요가 늘면서 하반기엔 상반기보다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