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대출, 은행 통해 받게 해 금리 낮춘다

중소기업을 퇴직하고 조그만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정모(56)씨는 지난해 은행에서 신용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대안을 찾아보려 했지만 캐피탈사·저축은행·카드사·대부업체가 모두 연 20%대 이상의 고금리를 요구했다. 정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사와 대부업체에서 3700만원을 빌렸지만 급격히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최근 개인 워크아웃(채무 재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씨처럼 은행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이 10%대의 중간 금리로 대출을 받을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은행과 저축은행 간의 연계영업을 전면 허용해 저축은행의 대출 금리를 크게 낮추도록 유도하겠다고 11일 밝혔다.

이렇게 되면 현재 저축은행들이 대출중개인에게 주는 수수료를 아껴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어 이른바 '금리 단층'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금리 단층이란 대출 금리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순차적으로 도열해 있는 것이 아니라 10%대 중간 금리가 비어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은행에서 저축은행 대출 중개

저축은행을 계열사로 둔 시중은행들은 지금도 저축은행에 고객을 소개해주는 식의 연계영업은 하고 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가 모두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했는데, 해당 지주회사의 은행에서는 신용도가 낮아 은행 대출이 어려운 고객들이 찾아오면 계열 저축은행을 찾아가도록 권유하고 있다.

금융위가 새로 추진하는 전면적인 연계영업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은행 창구에서 저축은행의 대출 상품 신청서를 받아 넘겨주는 방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저축은행 대출중개인들이 하는 역할을 은행 창구 직원이 그대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 상품의 금리가 얼마인지, 신용도에 따라 얼마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은행 창구에서 상담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저축은행을 인수한 금융지주들은 계열사 간 시너지를 누리겠다는 이유로 이 같은 방안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해왔지만 당국은 비(非)금융지주 저축은행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대해왔다.

하지만 금융지주들이 지난달 영업정지된 4개 저축은행을 떠안지 않겠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당근'을 주는 차원에서 전면 연계영업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금융위는 이르면 연내 이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금리 단층 현상 해소되나

금융 당국은 연계영업을 허용하면 저축은행이 10%대 금리로 대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의 평균 대출 금리는 27% 선이다. 그중 대출중개인에게 지급하는 수수료가 평균 8%에 이르기 때문에 이 비용을 줄이면 평균 10%대 금리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금리 단층 현상이 대폭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은행권의 평균 대출 금리는 연 6.6% 수준으로 낮은 편이지만, 경제활동 인구 4050만명 중에서 무리 없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 1~4등급은 53.7%인 2177만명에 그친다.

나머지 5등급 이하 1873만명은 10%대 초중반 금리로 돈 빌릴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연 20~30%대 금리를 요구하는 카드사·캐피탈사·저축은행·대부업체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금리 양극화 현상이 서민 가계를 궁핍하게 만들고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만 하면 '이자 폭탄'에 허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지주가 저축은행 시장 싹쓸이할까

연계영업이 자리 잡으면 금융지주 소속 저축은행들이 계열 은행을 등에 업고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서울시내 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주요 은행마다 전국에 지점이 1000개씩 있는데 우리가 당해낼 재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위는 금융지주 계열사가 아닌 일반 저축은행도 은행들과 업무제휴로 연계영업을 할 기회를 주겠다는 방침이지만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의 지방 지점들이 서울에 있는 계열 저축은행 대신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저축은행과 제휴를 맺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