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판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전권 완역

"끈끈이를 땅에 깔거나 길가 여기저기에 펼쳐놓으면, 호랑이가 왔다가 머리가 닿게 되어 끈끈이가 붙었음을 알게 된다. 발톱으로 후벼도 끈끈이가 떨어지지 않으면 땅에 앉는다. 잠깐 사이에 온몸이 모두 끈끈이 범벅이 되어 성내어 울부짖기도 하고 팔짝팔짝 뛰기도 하다가 죽는다."

조선판 브리태니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나오는 '호랑이 사냥법'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1764~1845)가 쓴 이 '백과사전'에는 농사부터 의류·기상·목축·사냥·음식·건축·의학·문화·예술·풍수·재테크에 이르기까지 실용 지식이 가득하다. 총 113권, 16개 분야, 2만8000여 항목, 252만여 자로, 단일 저서로는 조선 최대다. 9년 전 이 방대한 저술의 완역에 도전한 임원경제연구소(소장 정명헌·사진)가 11일 번역을 마치고 그 첫 결실로 개관서에 해당하는 '임원경제지'(씨앗을 뿌리는 사람)를 출간했다. 40여명의 소장 학자들이 9년간 매달린 성과다.

임원경제지는 친필 정본은 없이 서울대 규장각본 등 필사본 4종만 전해온다. 내용도 일부만 번역 소개됐을 뿐이다. 전권 완역을 마친 연구소는 2014년 4월 전 55권 출간을 목표로 현재 막바지 교감(校勘·각 필사본을 대조해가며 바로잡음) 및 편집 작업에 마지막 힘을 쏟고 있다.

"고구마 줄기를 기록한 '촌' 단위가 '척'으로 적혀 있는 등 각 필사본의 오류와 누락된 약 5000자도 찾아내 바로잡았어요." 작업을 지휘한 정 소장은 "252만여 자 전부를 전산화해 조선 고유의 문헌이 전체 본문의 27%에 이른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고 했다. 책에 나온 처방을 토대로 천연물 신약 발굴을 위한 통계 프로그램까지 개발 중이다. 그 사이 민간 후원회(www.im won.net)도 결성됐다. 교사·유기농단체·목수·전통주연구가·한지관계자 등 60여명이 동참했다. 후원회 사이트를 통해 오역과 실수 지적도 받는다.

"풍석 선생은 조선왕조실록에만도 64회나 언급됐던 인물인데도 다산 정약용이나 고산 김정호에 비해 알려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정 소장은 "완간 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록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