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대신 댄서, 그림 대신 벽지… 미술관의 변주

그림, 조각, 설치작품 등만 미술(art)일까? 미술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 현대미술의 주류를 형성한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계는 다양한 장르를 유연하게 흡수하고 있지만, 대중은 아직도 '미술=그림'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 미술에 대한 통념을 깨는 독특한 전시 두 건을 소개한다.

◇미술관에서 춤을:국립현대미술관 'MOVE'전

낡은 것, 정지한 것, 숨쉬지 않는 것으로 가득한 차가운 '미술관'에 피와 살, 땀과 온기(溫氣), 숨과 움직임 불어넣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8월 12일까지 열리는 'MOVE:1960년대 이후의 미술과 무용'전은 '죽은 공간' 미술관을 인간의 '움직임'으로 소생(蘇生)시킨 전시다.

전 세계 2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의 출품작 40여점의 주제는'춤'. 댄서의 춤이나 전시를 보러 온 '관객의 움직임'을 '전시'한다는 개념이다. 2010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첫선을 보여 독일 등으로 순회했던 전시를 가져와 우리 식으로 재해석했다.

생화학 박사 출신의 프랑스 안무가 자비에르 르 로이(Le Roy·49)는 조각 대신 살아 있는 댄서 3명을 전시(?)한 작품 '프로덕션(production)'을 내놓았다. 댄서들은 관객이 없을 때는 자유롭게 춤 연습을 하지만, 일단 관객을 발견하면 춤을 멈추고 관객에게 다가와 '노동'을 주제로 한 대화를 시도한다. 르 로이는 미술관에서 춤을 선보이는 대표적인 안무가 중 한 명. 2000년 무렵부터 미술 전시장 공연을 시작했고, 2011년엔 뉴욕 MoMA에서 허리를 구부려 손으로 땅을 짚고 걸어 다니며 신체에 고통을 주는 실험적인 안무 '미완성의 나'를 공연했었다.

왜 하필 미술관에 춤을 끌어들이는 걸까? 르 로이는 이렇게 설명했다. "'죽은 것들'의 장소인 미술관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었다. 미술 전시장은 극장과 달리 관람 시간에 대한 결정권이 관객에게 있다는 점도 미술관 공연이 매력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춤'이 어떻게 '미술'이 될 수 있나? "그 논의는 1960년대 이후 끊임없이 있어 왔다. 춤은 단순히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관객에게 시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

미국 작가 트리샤 브라운(Brown·76)은 옷이 잔뜩 걸린 빨랫줄 그물 위에서 댄서들이 옷에 몸을 넣었다 빼거나, 줄에 매달리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숲의 마루'를 출품했다. 독일 작가 크리스티안 얀콥스키(Jankowski·44)의 '지붕 위의 일상'(2007)은 관객이 퍼포먼스 영상을 보며 음악에 맞춰 신나게 훌라후프를 돌릴 수 있도록 한 '관객참여형' 작품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현대미술에서 가장 전위적인 파트인 퍼포먼스를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공연 중심의 전시라 항상 '작품'이 전시장에 있는 건 아니다. 각 작품 공연 스케줄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oca.g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관람료 4000원. (02)2188-6000

◇벽지도 작품이다: 아트클럽1563 'The Art on Your Wall'

"세상에 벽이 있는 한 회화는 존재한다." 회화의 종말을 걱정하는 화가 지망생들에게 선배 화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회화'를 넘어서 '벽지' 자체를 '작품'으로 삼은 전시가 8월 18일까지 서울 서초동 아트클럽1563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The Art on Your Wall(아트 온 유어 월)'.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 6명이 제작한 벽지를 전시장 벽에 발라 '전시'한다. 1960~1980년대 한국 밴드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 이기일(45)은 산울림, 양키스 등 1960~1980년대 LP음반 레이블(label)을 소재로 한 벽지 '라벨'을 내놓았다. 멀리서 보면 데미안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레이블의 집합체다.

스위스 작가 카로 니더러(Niederer·49)는 여행 엽서, 사진 등으로 유화를 그리거나 태피스트리를 제작해 온 작가. 이번엔 길을 잃고 홀로 숲 속을 걷고 있는 소녀를 그린 '숲 속의 소녀', 검정 바탕에 빨간 장미꽃 넝쿨을 그린 '플랜트(Plant)' 등을 내놨다. 사실 '벽지도 예술'이라는 개념은 19세기부터 있었다. 19세기 후반 영국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화에 반발해 수공업 제품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미술과 공예 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의 결과물인 아름다운 벽지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 등에 전시돼 있다. 관람료 없음. (02) 585-5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