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다른 나] 아마추어 카레이서로 활동하는 이승우(36) 이마트 바이어

"본업은 대형마트 잡화 상품 기획 동호회 운영했던 자동차 마니아

경주용 도로 달려 보고 푹 빠져 200마력급 미니쿠퍼JCW 몰아

시속 170㎞, 코너에선 70~80㎞ 주행하고 나면 업무 집중도 올라"

'우웅~' 하는 엔진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한다. 내 차에서 나는 소리인지 앞과 뒤 그리고 옆에서 질주하는 다른 차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핸들과 바퀴에 닿는 지면의 느낌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느새 '헤어핀'(회전 각도가 가장 큰 U자 구간)이다. 핸들을 꺾는 순간 몸이 바깥으로 튕겨 나갈 것처럼 차체(車體)가 한쪽으로 쏠린다. 차체가 밀리지 않게 컨트롤하면서 이 순간을 버텨야 한다. 발은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해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번갈아 밟는다. 차체의 뒷부분이 살짝살짝 들리며 옆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에 온몸이 짜릿하다. 아마추어 카레이서인 나는 2~3주에 한 번씩 이렇게 전남 영암의 F1 경기장을 찾아 서킷(둥근 경주용 도로)을 달리고 있다.

나는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모자나 우산·장갑·머플러 같은 제품을 기획하는 '어시스턴트 바이어'로 일하고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시즌 잡화 부문 상품을 기획하고 재고를 조절하는 것이 내 업무다. 요즘은 여름 기획 상품 판매율과 재고를 점검해서 매출을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여름에는 물에 적시면 냉각 효과가 3~4시간 지속되는 '쿨 스카프'를 신상품으로 내놓았다. 시즌 잡화는 최소 6개월 전에 물량을 예측해서 주문을 넣기 때문에 요즘처럼 날씨에 변화가 많을 때는 예측이 빗나가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럴 때는 서킷을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나는 전문 경주용 자동차를 몰지는 않는다. 200마력급의 BMW 미니쿠퍼JCW가 나의 '머신'이다. 아마추어 레이싱은 차량의 마력에 따라 일종의 체급 경기가 열리는데, 200마력급에서 미니쿠퍼JCW는 꽤 강력한 차종으로 통한다. 나는 다른 차들과 순위 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 기록을 재는 경기인 '타임 트라이얼(TT)' 종목에 참가한다. 3.047㎞ 코스 한 바퀴를 1분37초 정도에 돈다. 물론 아마추어 중에도 300마력급 이상 차량으로 순위를 다투는 '스프린터(ST)'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순위전에서는 '들이밀기(푸싱)'를 피할 수 없고, 결국 차가 파손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나는 아직 기록경기에만 참가해 나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내 차가 소중하니까…. 서킷의 직선 주로(走路)에서 시속 170㎞로 달리고, 코너에서도 거의 시속 70~80㎞를 유지하며 회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한 주행 연습과 자동차 정비가 필요하다. 영암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전국에서 자동차 260대 정도가 참여하는데, 얼마 전 나는 3위에 입상했다.

대학 시절부터 나는 자동차 마니아였다. 한때는 회원 1만명이 넘는 한 인터넷 자동차 동호회의 운영자로도 활동했다. 그 당시 동호회원 중에는 도심에서 속도를 내고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달리며 다른 운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지금도 인천공항 인근 도로나 자유로 등지에서 드래그(자동차 경주)나 폭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분들한테 꼭 한번 서킷에서 달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영암까지 내려가 1타임 25분간 서킷을 이용하는 비용 3만5000원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반 도로를 질주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리고 일단 달려보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맛볼 것이라고 장담한다. 나 역시 지난 2008년 우연한 기회에 강원도 태백의 서킷을 달려본 이후 카레이싱에 푹 빠져 버렸다.

처음 서킷을 달렸을 때 내 차보다 훨씬 마력 수가 낮은 차조차 추월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멋모르고 일반 타이어를 달고 갔다가 사이드월(타이어 옆면)이 마모돼 펑크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서킷은 직선 구간보다는 코너 위주이고, 사이드월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에 반드시 경주용 타이어를 달아야 한다. 요즘 나는 조금씩 기록을 단축하고 있다. 서킷에서 안정적으로 주행하려고 서스펜션을 갈고 브레이크를 손보고 스태빌라이저(핸들링을 좋게 해주는 튜닝 용품)도 바꿨다. 이제 나에게 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점점 내 수족처럼 나와 한몸이 되고 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집 다음으로 많은 비용을 들이는 물건인데 제대로 알고 타야 하지 않겠는가.

한 달에 한두 번 서킷을 달리고 나면 확실하게 재충전이 되고 회사에서 업무 집중도가 높아진다. 올해 나는 기존 우산에 5가지 개선 사항을 적용해 불량을 최소화한 신형 우산을 개발해 제품화했다. 또 취미로 시작한 자동차지만 이제는 드라이빙 스킬, 차량 정비, 자동차 관련 용품 지식이 쌓이고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들까지 모두 나의 재산이 되었다. 취미를 통해서 자동차 관련 바이어로 일할 수 있는 경력도 쌓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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