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경남] 일석다조 행복 누리는 '도시 농부'들 늘어난다

회사원 오모(54·부산 금정구)씨는 매일 아침이 즐겁다. 식탁에 올라오는 고추, 상추, 가지 등 야채를 먹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요놈 튼실하네." "마트에서 산 것보다 맛이 더 고소한데…." 이들 야채를 놓고 아내와 나누는 대화도 정겹다. 오씨는 "아파트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고 고추·상추 등을 키우면서 생긴 생활의 변화"라고 말했다.

부산에 '도시농업' 바람이 불고 있다. 137㎡ 아파트에 사는 오씨는 베란다 텃밭에서 고추·상추·가지·깻잎·포도 등을 키우고 있다. 오씨는 "삭막한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흙내음에다 채소 등 식물을 키우는 맛, 그리고 친환경·유기농식으로 키워서 먹는 맛 이런 것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씨앗이나 모종을 사러 함께 나들이하고, 나날이 크고 자라는 채소·과일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부부간 금실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지난 9일 부산 동구 초량6동 시영아파트 앞. 단독주택 옥상 위에 있던 물탱크 등이 변신한 100여개의 상자들이 놓였다. 그 안에는 고추·상추·가지 등 채소와 초록, 검붉은, 노란 빛의 벼들이 심겨 있었다. 텃밭과 텃논이 함께 있어 '텃밭 플러스 텃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산시 농업기술센터 김은화 도시농업팀장은 "수돗물을 각 가정에 곧바로 공급하는 '직결급수' 이후 시내 단독주택에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는 물탱크를 활용, 텃밭이나 텃논으로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산시내 주택 옥상에 설치돼 있는 노란, 파란색의 물탱크는 23만개. 이 중 98%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부산시 측은 올 하반기부터 신청을 받아 이들 물탱크를 텃밭으로 고쳐주는 서비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도시농업' 바람은 주민, 학교 등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서구 동대신1동 주민자치회는 지난 2일 동 주민센터 옥상에 주민들의 텃밭 체험을 위한 '하늘텃밭공원'을 만들었다. 주민자치회는 이날 텃밭에 상추 등의 씨앗을 뿌리고 텃밭 상자에 담당 가족 나무팻말 달기 등의 행사를 했다.

중구 동광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와 새마을부녀회는 지난달 동광동 주민센터 옥상에 '친환경 옥상텃밭'을 만들었다. 이들 모임 회원들이 직접 만든 상자들로 이뤄진 이 텃밭에는 상추, 오이, 고추, 대추나무, 꽃 등을 심었다. 이들 모임 측은 "이 텃밭에서 기른 채소 수확물은 지역 내 저소득층·홀몸노인 등 소외계층에 전달할 것"이라며 "자연을 곁에 두면서 이웃 간 소통과 화합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부민2동 주민자치회는 지난달 초 동네 폐·공가에 191㎡ 규모의 텃밭을 만들고 상추·고추를 심어 재배 중이다. 암남동주민자치회는 동네 경로당 주변 빈 공간을 이용해 무공해 콩나물을 기르고 있다. 이들 야채와 콩나물의 재배는 지역 어르신들이 전담하다시피하고 있다. 암남동 '무공해 콩나물'은 지역 내 송도 일대 횟집에 팔아 수익을 내고 있다. 콩나물 재배에 참여하고 있는 임정용(78)씨는 "종전 경로당에서 온종일 수다 떠는 게 전부였지만 요즘은 콩나물 기르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콩나물을 기르면서 마음도 넓어지고 돈도 벌 수 있어 모두가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남구 용호동 분포초등학교와 금정구 금성동 금성초등학교, 강서구 대저동 대상초등학교 등은 학교 안에 '텃밭 학습원'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상추·오이·고추 등을 기르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분포초등은 이 학습원에서 기른 무공해 채소로 급식 반찬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금성초등 등 2개 학교는 오는 7월과 9월 방과 후 수업으로 원예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 밖에 부산진구 양정유치원 등 유치원 5곳은 옥상에 텃밭을, 초등학교 4곳은 교내 텃밭 학습원을 설치 중이다. 또 지난해 '부산도시농업포럼'이 창립했고, 부산시 농업기술센터(nongup.busan.go.kr)와 부산귀농학교(www.busanrefarm. org) 등의 도시농업 관련 프로그램엔 참가자들이 몰리고 있다.

이처럼 '도시농업'이 인기를 끌면서 지원 조례 제정,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개설 등이 추진되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오는 7월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할 예정이고 부산시 농업기술센터는 2개월 과정의 '도시농업 코디네이터 과정'(정원 20명)을 개설하기로 하고 현재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 오는 7월부터 운영될 '도시농업 코디네이터 과정'은 도시농업 체험 해설사를 양성하는 것으로 농업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 부산시는 2016년까지 시내 도시텃밭 200㏊를 조성할 계획이다. 부산시는 이를 위해 '부산시 도시농업육성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린 도시텃밭 활성화 종합 시행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부산시 정현민 해양농수산국장은 "도시농업은 개인적 취미를 넘어 도시와 농촌의 상생발전과 도시공간 이용 효율화를 가져다 주는 경제적 기능, 도심 안 녹색공간을 확충하는 환경적 기능, 시민과 청소년들의 정서를 순화하면서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다"며 "그런 만큼 도시농업이 부산에서도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시농업

도시농업(Urban Agriculture)은 도시 안의 다양한 공간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행위를 말한다. 주말농장이나 텃밭, 아파트 베란다, 주택 옥상에 채소·과일 등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농업 행위 자체 외에 그것의 사회, 문화적 영향과 가치에 주목한다. 즉, 농업이 갖는 생물다양성 보전, 기후조절, 대기정화, 토양보전, 공동체 문화, 정서함양, 여가지원, 교육, 복지, 지속가능한 도시 등 다원적 가치를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