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희, 中서 황제호령 여걸 되다

배우 장서희(40) 하면 여전히 '팜므파탈(요부)'이나 '복수의 화신' 같은 드센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역으로 데뷔해 30년 동안 숱한 영화·드라마에 출연해왔지만 '인어아가씨(2002)'의 은아리영, '아내의 유혹(2008)'의 구은재 같은 독종 캐릭터로 깊은 인상을 남긴 탓이다.

그런 장서희가 이번에 한결 스케일이 장대해진 팜므파탈로 중국 시청자들과 만난다. 다음 달부터 중국 후난 위성TV에서 방송되는 60부작 '수당영웅'에서 여걸 '장려화' 역을 맡아 자오원쉬안(趙文瑄)·장웨이젠(張衛健) 등 중화권 스타들과 공연하는 것.

12일 서울 잠실 한 카페에서 만난 장서희는 "10년 동안 꾸준히 해온 중국 활동이 비로소 꽃피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했다. "장려화는 중국 역사에서도 유명한 여걸이죠. 황후였다가 나라가 망하며 천민으로 전락하자 복수를 꿈꾸며 수·당 나라 황제들에게 접근, 그들을 쥐락펴락하는 인물로 그려져요. 중국에서 사극 주연 여배우로 외국인을 캐스팅하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라 이 역을 욕심냈던 중국 여배우들이 다들 '벙쪄했대요'.(웃음) 그동안 독한 연기로 주목받은게 큰 도움이 됐죠. 하하."

장서희는 '인어 아가씨'로 스타덤에 오른 뒤 2003년 중국에 진출, 지금까지 양국을 오가며 활동해왔다. 그는 "중국 활동을 하면서 위기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초기에는 실패작이 더 많았어요. 심지어 찍어놓고 아예 방송 안 된 작품까지 있었으니까요. 실패를 밑거름 삼아 뒤늦게 불붙은 거죠. '수당영웅'은 거기에 기름을 부어줄거고….(웃음)"

30대가 돼서 중국 진출을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더 넓은 무대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죠. 늦은 나이라고들 하지만 젊어서만 해외진출하는 건 아니잖아요. 연기는 때가 정해진 게 아닌 것 같아요. 기왕 잘 될 거면 나중에 잘 되는 게 더 좋죠. 지금처럼요."

그는 "중국 연예계 하면 후진적이고 체계적이지 않다는 편견이 있는데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고도 했다. "'아내의 유혹' 땐 (드라마 방영과 함께 진행되는 과도한 촬영 일정 때문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중국에선 드라마가 100% 사전제작 시스템이에요. 방송·연예 매니지먼트 시스템도 체계적이고 또 무섭게 발전하고 있어요. 중국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절대로 '한국에서 명성이 있으니 당연히 중국에서도 인기가 저절로 따라오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한 단계 한 단계씩 밟아가면서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는 거죠."

장서희는 2005년 진행하던 한 TV프로그램에 부은 얼굴로 출연했다가 '성형 의혹'을 받는 등 여러 논란과 악플에 시달렸던 여배우 중 한 명. 그에게 '중국에서는 악플 공세가 없느냐'고 물어봤더니 여유 있게 웃음 지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해결해준 것 같아요. 속도 단단해지고 한편으론 대담해진 듯하고요. 연예인이 수도승도 아니고…. 안티도 좀 있어야 매력 있죠. 하하."

"한국 내에서의 인기는 의식하지 않느냐"고 묻자 장서희는 "최근에 크게 히트한 국내 드라마 중 한 작품은 처음에 나에게 출연제의가 들어왔던 작품이라 살짝 아깝긴 하더라.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활동들이 연기자로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맘이 편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조바심이 나지 않겠느냐고 걱정할 법도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연기자로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이 크니까요. 서른한 살에 (인어아가씨로) 처음 대박 친 배우, 똑같은 (복수의 화신) 캐릭터로 두 방송사에서 연기대상 받은 사람, 저 말고 또 없잖아요. 하하.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잘 풀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