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I] [주목, 이사람] "극장이 있으면 극단이 있어야죠"

지난해 10월 28일, 예술계에서 오랫동안 숙원해 온 '예술인 복지법'이 통과되었다. 연극, 영화 등 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생활고와 그로 인한 지병은 감수해야 할 운명으로 여겨져 왔다. 유망한 여류작가가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후, '더 이상 예술인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일명 '최고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안을 위해 물밑 노력을 기울인 예술인 중에 이종열 (사)뮤지컬 협회 상임이사가 있다.

◇최근엔 '레미제라블' 기획제작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이종열(55·일산동) 이사는 며칠 후 찍을 CF 촬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이 터졌는데(충혈되었는데) 의사 처방을 받아서 그나마 이만큼 가라앉은 거예요. 배우가 자기 관리를 못 하면 안 되니까 빨리 나아야죠."

그는 드림인터내셔널 대표이사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CF광고에서는 익살스러운 연기로 '피자 굽는 요리사' '금융 상품 모델' '밉지 않은 회사 간부' 등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무대에 서고 싶은 연극인이요, 뮤지컬 배우'라고 소개한다.

그는 체홉의 '갈매기'(1980)로 연극계에 발을 들였고 '무덤없는 주검' '금관의 예수' 외 80여편에 출연했다. 90년대부터 기획 제작자가 되어 '어머니' '아가씨와 건달들' 등 30여편을 만들고, 한일 합작으로 '씨앗-우장춘 박사의 선택'(2005), 한중일 합작공연 '하늘의 열쇠'로 서울·도쿄·상하이에서 순회공연하기도 했다. 최근에 그가 기획 제작한 공연은 '레미제라블' '거대한 삶'으로 청소년 대상 오전 공연이 만석이 될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연극 외에도 어린이 난장 페스티벌, 한민족문화공동체대회(Korean Festival) 등을 맡아 공연의 장을 만들어 왔다. 연극·공연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요즘 모처럼 마음 가벼운 날을 보내고 있다.

"예술은 자기 좋아서 하고 가산 탕진하면서 하는 일이 맞다지만, (우리나라가) OECD며 세계 10위권의 국가가 되었으면서도 아직 남아있는 사각지대가 예술분야입니다. 국가에서 좀 더 보호함으로써 전 세계로 K-Pop이 나가듯이 (예술도) 진출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십 몇년 동안 추진해 온 '예술인 복지법'이 일단 산재보험만 적용되는 선에서 통과가 되었어요. 앞으로 시행령에 나머지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도 차차 얹혀야겠죠."

◇"오디션으로 배우 뽑아 순환"

그는 지난해 예술인들의 복지 안전망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가 연극협회 사무국장 시절부터 추진해 온 예술인 복지법이 통과되자 지인들에게 말해 온 시립극단의 활성화도 힘이 실리게 있다. 특히 그가 27년간 살아온 고양시에 그는 주목한다. "시에서 고양시처럼 훌륭한 극장 2개(아람누리, 어울림누리)를 갖고 있는 데가 서울시 말고는 (전국에) 없을 겁니다. 많은 예술가가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고 훌륭한 극장에 공연활동 많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사람들 만날 때 자연스레 말했죠. 시립극단 만들면 좋겠다고."

현재 전국에 국공립 연극 및 뮤지컬 단체는 국립극단, 서울시립극단, 경기도도립극단, 전주시립극단, 목포시립극단 등 12개밖에 없다. 그는 "(예술인) 노조에 의한 예술인 오디션 기피 등 지자체에서 단원 순환 구조를 못 갖고 있는 게 큰 원인"이라고 말한다.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시립극단을 대신해 상주연극단체를 1~2년마다 뽑는다. 고양시도 극단 '차이무'가 상주단체로 계약을 맺고 공연을 하고 있다.

"고양시에 100만 인구가 형성되는 동안 장르별로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게 되었어요. 백마에 오랫동안 살고 계신 연출가 강영걸 선생님, 배우 양택조 선생님, 성우로 더 잘 알려진 조명남, 윤여성 극단 로열씨어터 대표, 최상규, 신택기 고양시 연극협회지부장, 이종일 무대감독 겸 연출, 김인수 서울 시립극단 배우, 연극계에서 유명한 여배우로서 강애심, 차유경씨, 이종훈 연출가, 박우화 기획자, 뮤지컬의 대들보 같은 김봉환, 국립극단 출신 배우 김재건 등이 살고 있죠.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 분들을 장르별로 모아서 콘셉트를 하나 정하고 사계절 축제 같은 것을 한다면 지역인들이 만든 특화된 공연이 탄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시립극단은 시의 발전을 위해서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할 수 있다. 공연을 창작함으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 하나가 만들어지고, 고양시의 이름으로 외국에 알리는 홍보를 할 수 있다. 연극교실 같은 프로그램으로 시민을 위한 교육기능을 할 수도 있다. 시립극단을 항상 젊게 유지하기 위해 배우를 오디션으로 뽑아 순환시키는 방법은 앞으로 예술인만 가입하는 '예술인 노조설립'과 '예술인 복지법'이 함께 정착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학로에서 보면 지금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관극 훈련이 잘 되어 있어요. 그들이 크면 저녁 먹고 '오늘 무슨 공연 보러 가지?' 할 겁니다. 이제 지자체마다 (공연장) 지을 것 다 지었으니 예술인들에게 제작비를 주고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자체마다 시립극단이 활성화 되면 경쟁적으로 좋은 공연이 많이 나올 수 있어요." 이종열 이사가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