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그는 '책 읽는 소녀' '몽상하는 소녀'였다. 집 근처 텃밭을 보면 "밭 지하에는 난쟁이들이 살고 있겠지"라고 상상했고, 초등학교 글짓기 시간에 '교실'을 주제로 받으면 교실 화분의 시선에서 산문을 쓰는 어린이였다.
대학 진학은 부산대 수학교육과로 했다. "글은 직업이 아니라 평생 안고 가는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허기는 여전했다. 독학에 의한 학위취득 시험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수학교육과 재학 중에 국문과 과정을 동시에 마쳤다. 4회의 시험을 합격하면 학위를 주는 과정이었는데, 2년 만에 돌파했다. "구태여 학위까지 필요했느냐"고 물었을 때, 이 야무진 작가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고 답했다. 법학 공부는 우연적이다. 졸업하던 해 임용고시에 떨어진 뒤, 반은 도피의 심정으로 부경대 법학부 야간과정에 입학했다. 26세 때의 일이었다. 제일 나이 많은 신입생이 아닐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50대 만학도,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한 맺혀 들어온 또래들, 심지어 나이 지긋해서 다시 들어온 현직 변호사도 있었다. 그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공부하면서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나"를 절감했다고 한다. 바로 다음 해 임용고시에 붙고 학교에도 취직이 되었지만, 4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학위를 받았다. 그는 "아직 사람으로서 공부가 부족하니, 저 위에 계신 누군가가 나를 이 과정에 보내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상작인 장편 '아홉개의 붓'은 10년을 공들인 작품이다. 지난 2003년 한 판타지 창작 모임에서 썼던 '이끼의 숲'이란 단편이 그 씨앗이 되었고, 숙성(熟成) 전에 공모전에 내보냈다가 본선 진출에 그친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 동안 수정과 퇴고를 반복해왔다. 아니, 어쩌면 작품이 성숙해진 게 아니라, 자신의 인격이 성숙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교사 생활도 벌써 10년. 학생들 간의 빈부격차, 기질적 차이, 굳이 왕따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 '격차'에 의해 빚어지는 또래끼리의 차별에 함께 아파하고 분노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홉개의 붓'은 천인(天人), 상인(常人), 비인(卑人)이 살고 있는 가상의 시공간을 무대로 한 작품. 상인의 심각한 비인 차별과 그 극복을 위한 아홉 개의 붓 이야기로 우리의 현실을 윽박지르지 않고 되새김하게 만든다.
그는 "내 아이가 자라서 읽을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면서 "힘들어도 희망을 가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상처를 극복하고 화해하는 이야기, 절대적인 악이나 없애야 하는 악이 아니라 아픔을 보듬어주고 서로 용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고 했다.
국어교사였던 아버지가 지어주신 그의 한글이름 한나리는, 크다라는 의미의 '한'과 시냇물의 옛말인 '나리'를 합친 말. 시냇물이 흘러 강으로 가듯, 넓은 세계로 가라는 뜻이었다. 그의 품이 넉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