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요리, 까칠했던 그녀를 바꾸다
입력 : 2012.06.14 23:16
요리 배우러 온 '뉴요커' 해주씨… "햄버거 촌스럽고 피자는 쉬워요"
자꾸 툴툴거리면서 메모도 안해… 그래도 요리하는 내 손 집중하고
어느 날 '수제 치즈 만든다'더니 '선생님…' 하며 고로케 사다 줘
서른일곱 살 해주는 서울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으로 유학 가서 사진작가가 됐다. 패션 도시 뉴욕에서 패션 잡지 사진을 찍었으니 그녀의 실력은 인정해야겠다. 그녀의 홈페이지는 화려하고 멋졌다. 세련된 사진이 넘쳐났다. 지난해 그 해주가 귀국했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에 집을 샀다. 매달 내가 운영하는 요리 교실에도 나왔다.
그녀가 요리 교실에 처음 온 날 일본식 햄버거 스테이크 코스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를 배우던 그녀가 냉랭하게 말했다. "뉴욕에서 고기 같은 건 거의 안 먹었어요. 주변에선 다들 채식했고, 햄버거 스테이크 같은 거 왠지 촌스럽잖아요." 며칠 뒤 피자 요리를 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피자 도우 같은 건 집에서도 대충 쉽게 만들 수 있어요." 그녀는 계속 투덜거렸다. 만만치 않은 수강생을 만난 나는 꽤 진땀이 났다. 성격 급한 나는 결국 "대체 왜 배우러 온 거예요?" 하며 따져 묻기도 했다.
18년 전 한국에 유학생으로 왔다가 3년 만에 한국 남자와 결혼한 내가 요리 교실을 차린 건 2008년이었다. 프랑스 음식 요리사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오래 살았던 나는 다른 나라 언어와 문화가 늘 궁금했다. 나는 요리를 전공으로 택하진 않았지만 결국 서울 한구석에서 요리 교실을 차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핏줄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요리 교실 4년 역사에서 이런 학생은 처음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런 상황에서도 해주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요리하는 내 손을 유심히 쳐다봤다는 점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요리를 맛있게 시식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해주는 종종 요리 수업 중에도 담배를 피우려고 자리를 떴고, 내가 나눠준 레시피에 어떤 메모도 하지 않았다. 얼핏 불성실하게 보이는 그녀였지만, 단 한 번도 결석은 하지 않았다. 불평은 하면서도 레시피대로 직접 만든 도우를 발효시킨 후 치즈를 올려서 피자를 구웠다는 얘기도 했다.
1년이 넘도록 꾸준히 요리 교실을 다니던 해주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메모를 하지 않았고, 담배를 피웠다. 정말이지 궁금했다. 요리 교실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는 만들기는 하는 것일까. 어느 날 해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수강생들 사이에서 해주 이야기가 나왔다. "해주씨, 요즘 밝아졌더라고요. 왠지 모르게 안정되었다고 할까요?" "맞아요. 처음보다 많이 둥글둥글해졌죠. 이젠 얘기도 부드럽게 하고요." 그러고 보니 어느 때인가 해주는 뉴욕에서 사귀었던 남자 친구 이야기며,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가 요리 교실에 처음 온 날 일본식 햄버거 스테이크 코스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를 배우던 그녀가 냉랭하게 말했다. "뉴욕에서 고기 같은 건 거의 안 먹었어요. 주변에선 다들 채식했고, 햄버거 스테이크 같은 거 왠지 촌스럽잖아요." 며칠 뒤 피자 요리를 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피자 도우 같은 건 집에서도 대충 쉽게 만들 수 있어요." 그녀는 계속 투덜거렸다. 만만치 않은 수강생을 만난 나는 꽤 진땀이 났다. 성격 급한 나는 결국 "대체 왜 배우러 온 거예요?" 하며 따져 묻기도 했다.
18년 전 한국에 유학생으로 왔다가 3년 만에 한국 남자와 결혼한 내가 요리 교실을 차린 건 2008년이었다. 프랑스 음식 요리사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오래 살았던 나는 다른 나라 언어와 문화가 늘 궁금했다. 나는 요리를 전공으로 택하진 않았지만 결국 서울 한구석에서 요리 교실을 차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핏줄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요리 교실 4년 역사에서 이런 학생은 처음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런 상황에서도 해주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요리하는 내 손을 유심히 쳐다봤다는 점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요리를 맛있게 시식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해주는 종종 요리 수업 중에도 담배를 피우려고 자리를 떴고, 내가 나눠준 레시피에 어떤 메모도 하지 않았다. 얼핏 불성실하게 보이는 그녀였지만, 단 한 번도 결석은 하지 않았다. 불평은 하면서도 레시피대로 직접 만든 도우를 발효시킨 후 치즈를 올려서 피자를 구웠다는 얘기도 했다.
1년이 넘도록 꾸준히 요리 교실을 다니던 해주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메모를 하지 않았고, 담배를 피웠다. 정말이지 궁금했다. 요리 교실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는 만들기는 하는 것일까. 어느 날 해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수강생들 사이에서 해주 이야기가 나왔다. "해주씨, 요즘 밝아졌더라고요. 왠지 모르게 안정되었다고 할까요?" "맞아요. 처음보다 많이 둥글둥글해졌죠. 이젠 얘기도 부드럽게 하고요." 그러고 보니 어느 때인가 해주는 뉴욕에서 사귀었던 남자 친구 이야기며,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날 내가 냉장고에서 요리 재료인 생크림을 꺼내 볼에 담아 거품을 내고 있을 때 해주가 부드럽게 말했다. "저, 집에서 치즈 만들어요. 그 생크림으로요." 한창 요리 교실을 진행하는 중이라서 그녀가 직접 만든다는 치즈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순 없었지만 아마도 간단히 만들었을 것이다. 진짜 치즈라기보다는 치즈를 만들고 남는 유청(乳淸)으로 만들 수 있는 이탈리아의 리코타치즈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치즈요, 선생님한테 배운 피자 위에 얹어 먹으면 맛있어요." 그러자 수강생들이 해주에게 집에서 만든 치즈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수제 치즈를 말할 때의 해주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어머니와 어떤 갈등이 있는지, 뉴욕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좀처럼 알 수 없었지만 그 표정만으론 순수한 내면을 보여준 듯했다.
요리 교실을 하지 않는 날 동네 시장을 보러 갔던 길에 우연히 해주를 만났다. "아! 선생님, 잠깐 기다려 보세요." 나는 두 손에 비닐봉지를 잔뜩 든 채로 길가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소문이 나서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는 동네 빵가게에 뛰어들어갔던 해주가 옛날 스타일의 고로케를 사가지고 나왔다. "이 집 고로케 맛있어요. 따끈따끈해요." 나는 밥을 먹고 나온 참이라 배가 불렀지만 한 입 먹어보았다. 으깬 감자에 통조림 옥수수 알갱이, 냉동 완두콩, 잘게 썬 당근이 입 안에서 어색하게 녹아내렸다. 고로케를 삼키려는 순간 어쩐지 울컥하며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고, 목 아래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만약 눈물이라도 흘린다면 '정말 맛있어서 감동하셨구나' 하고 해주가 오해할 것이었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인사말을 남겼다. "잘 먹었어요."
맨손으로 잡았던 기름진 고로케의 느낌이 손바닥에 그대로 남았다. 또 고로케의 냄새와 맛도 익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주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요리 만들기가 까칠했던 그녀의 성격을 변화시킨 것이었다. 이후에도 요리 교실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수제 치즈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곤 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알아갈수록 궁금해지는 사람, 서울에 돌아와서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해주가 뉴욕에서처럼 당당하게 사진 실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물론 무엇보다 그녀가 만든 수제 치즈를 가져다주면 제일 좋겠고.
요리 교실을 하지 않는 날 동네 시장을 보러 갔던 길에 우연히 해주를 만났다. "아! 선생님, 잠깐 기다려 보세요." 나는 두 손에 비닐봉지를 잔뜩 든 채로 길가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소문이 나서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는 동네 빵가게에 뛰어들어갔던 해주가 옛날 스타일의 고로케를 사가지고 나왔다. "이 집 고로케 맛있어요. 따끈따끈해요." 나는 밥을 먹고 나온 참이라 배가 불렀지만 한 입 먹어보았다. 으깬 감자에 통조림 옥수수 알갱이, 냉동 완두콩, 잘게 썬 당근이 입 안에서 어색하게 녹아내렸다. 고로케를 삼키려는 순간 어쩐지 울컥하며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고, 목 아래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만약 눈물이라도 흘린다면 '정말 맛있어서 감동하셨구나' 하고 해주가 오해할 것이었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인사말을 남겼다. "잘 먹었어요."
맨손으로 잡았던 기름진 고로케의 느낌이 손바닥에 그대로 남았다. 또 고로케의 냄새와 맛도 익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주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요리 만들기가 까칠했던 그녀의 성격을 변화시킨 것이었다. 이후에도 요리 교실이 있을 때마다 그녀의 수제 치즈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곤 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알아갈수록 궁금해지는 사람, 서울에 돌아와서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해주가 뉴욕에서처럼 당당하게 사진 실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물론 무엇보다 그녀가 만든 수제 치즈를 가져다주면 제일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