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분비물… 껌딱지… 문화재 표석 관리 허술

서울시 중구 정동 성공회 대성당 앞마당 야외 카페 근처에 '명례궁터'라고 적힌 둥그런 대리석 기념비가 서 있다. 조선 세조의 사저였던 '명례궁' 자리를 나타내는 문화재 표석(標石). 지난 2000년 서울시가 500만원을 들여 세웠다. 지난 11일 살펴본 이 표석은 대리석 글씨가 뭉개져 있고, 표면은 비둘기 분비물로 얼룩져 있었다. 바로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회사원들은 "이 돌이 그런 거였어요?"라며 놀랐다.

종로 3가 피카디리극장 앞 인도에 세워진 '6·10 독립만세운동 선창터' 표석도 처지는 비슷했다. 떡볶이 노점상에서 음식재료를 담던 포장박스를 표석 옆에 쌓아두는 바람에 행인들 누구도 문화재 표석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종로구 일대 이런 표석은 10여개. '김수영 생가터' '육의전터' '혜정교터' 등 지금은 사라졌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시설이다. 그러나 대부분 귀퉁이가 부서지거나 껌이 붙고 쓰레기 더미에 묻혀 아무런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서울 전역에 놓인 문화재 표석은 339개. 1개당 500만원씩 17억원가량 예산이 들어갔는데 설치만 해놓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건립 취지를 못 살리고 있다.

한국전통문화대 보존과학과 강대일 교수는 "표석은 문화재가 아니고 안내판이라 관리에 소홀한 경향이 있다"며 "오염이 심해지면 안내판으로서 구실을 하기 어렵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아 관청에서 좀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