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아기 작명·택배… 구청·주민센터에 맡기세요

지난 4월 김모(70)씨는 부인과 함께 서울 강동구 고덕1동 주민센터(옛 동사무소)를 찾았다. 살던 집이 재건축되자 이사 갈 전셋집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김씨는 주민센터에서 공인중개사로부터 이사 갈 집을 소개받고, 역시 주민센터에 있는 시중 은행 직원에게 전세금 대출 상담까지 마쳤다. 이전까지 자금이 5500만원뿐이라 이사할 집을 찾는 데 애를 먹었지만, 주민센터를 통해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 한 연립주택을 소개받고, 부족한 전세자금 1600만원도 차입하는 데 성공했다. 주민센터가 김씨 이사 고민을 해결해준 셈. 권혁자 강동구 부동산정보과장은 "재건축이 활발해 이사 수요가 많은 고덕1동주민센터에 지난 2월부터 전·월세 상담창구를 운영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전세상담 256건, 대출상담 579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주로 주민등록 등·초본, 호적등본, 인감증명 등을 뗄 때나 가던 구청이나 주민센터가 변신하고 있다. 부동산·대출·법률 상담에서 예비학교, 화상진료, 결혼 중매까지 다양한 행정서비스로 단장했다.

이 같은 변화는 활발해진 인터넷 민원 발급 때문. 인터넷으로 민원서류를 떼는 비율은 2010년부터 구청·주민센터 방문 발급 건수를 앞질렀고, 2011년에도 인터넷 건수(29만983건)가 행정기관(27만7292건)보다 많았다. 인터넷 민원서비스 '민원24' 회원 수가 지난달 100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자 할 일이 줄어든 구청과 주민센터가 이런 맞춤형 서비스로 활로를 찾아나선 것이다.

서울 서초구청 민원센터에선 요일별로 전문가들이 나서서 법률, 부동산 등에 대해 상담해준다. 월요일은 변호사, 화요일 세무사, 수요일 건축사, 목요일 법무사, 금요일은 노무사와 부동산중개사가 무료로 고민 해결에 나선다. 2007년부터 5년째다. 이 밖에도 수요일은 취업컨설팅 코너를 통해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기법, 구인업체 정보와 취업 알선을 도와주며, 매주 화·목요일은 미혼 남녀 만남이 벌어진다. 금요일엔 신생아 작명, 월요일엔 장례 상담까지 할 수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구청 민원센터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강북구 송천동·삼각산동·번3동·수유1동 등 주민센터 4곳에선 지난해 8월부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예비 학교를 만들었다. 퇴직 교사들이 나서서 읽기·수학 등 초교 1학년 과정을 매일 가르치며, 독서와 예절 지도도 한다.

관악구 삼성동 주민센터는 근처 고시촌 출신 사법연수원생 1명이 상주하며 민사·형사·가사 법률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려주는 '무료 법률상담교실'이 있다. 강남구 일원2동 주민센터는 원격화상진료소를 운영, 영상카메라를 설치한 진료소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환자를 원격으로 살핀다. 진료소엔 혈압기, 혈당측정기 등이 갖춰져 있고, 간호사 1명이 센터에 나와 진료를 돕고 있다. 은평구 대조동 주민센터는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서비스를 지난해 7월부터 제공하고 있다. 단독주택 밀집지역이고 주로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사는 지역 특성에 맞췄다. 김상인 행정안전부 조직실장은 "행정 기관 역할이 점점 더 다양해진다는 신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