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환경운동 30년'… 최열 환경재단 대표

"군에서 제대하고 나와보니 이철·유인태·유홍준 등 친구들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들어가 있더라. 나는 1975년 명동성당에서 이 친구들 석방과 유신헌법 철폐를 외치다가 붙잡혔다. 감방에서 '우리 나가면 무얼 할 거냐'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대학 전공(화학)을 살려 공해 문제를 다뤄보겠다'고 하자, 친구들이 '야, 공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며 놀렸다."

최열(63)씨와 처음 대면한 건 90년대 초 환경처를 출입할 때였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는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채 작은 키로 들락거렸다. 공무원이나 출입 기자들에게 썩 주목받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반갑지 않은 객(客)처럼 대접도 소홀했다.

그런 그가 국내에서 '환경운동'이라는 걸 처음 시작해 30년째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감방에서 시작된 건가?

"감방에서 일본어를 독학해 환경 관련 일본 책 250권쯤 읽었으니 그런 셈이지."

―그때 풀려나와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나?

"4년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왔는데 주변에서 놔줘야지. 시국도 어지러웠고…."

―감방의 계획대로 안 된 모양이군.

"여섯 달 만에 '명동 YMCA 위장 결혼 사건'(1979년 11월 24일 결혼식을 위장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한 시위)으로 또 잡혀 들어갔다. 그때 직업란에 '공해 평론가'로 적었다. 교도관이 오더니 '요즘 도자기 한 점이 얼마냐?' '병풍 값은?'하고 물었다. 대충 답을 해주다가 '이걸 왜 나한테 묻지?' 의문이 들더라. 나를 '공예(工藝) 평론가'로 안 것이다."

―두 번째 구속 때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가 막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처음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니 무조건 때렸다. 다들 기절했다. 빨리 기절해야 덜 맞는데, 난 그게 안 돼. 수사관들이 '이 XX는 플라스틱 인간'이라며 더 두들겨 팼다. 퉁퉁 부어올라 나중에 얼굴 크기가 2배가 됐을 정도였다. 그 안에서 한 번 전두환 사령관을 봤는데, 순간 '이 사람이 권력을 잡겠구나'하는 느낌이 딱 오더라."

―젊은 날 수감 기간이 모두 얼마인가?

"4년하고 또 1년4개월을 살았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날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듬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열었다."

―공해문제연구소의 첫 작품은?

"한국판 '이타이이타이(아프다는 일본어로 카드뮴 중독증)' 사건이었다. 1983년 울산의 온산공단 주민들이 뼈마디가 쑤시는 괴질병에 시달린다는 제보를 받았다. 주민들이 항의하러 공장에 찾아가면 정문 앞에 붉은 글씨로 '접근하면 쏜다'고 써놓던 시절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뀐 거지.

"현장 조사를 나가니 한 해녀가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우리 애들만 살려달라'고 했다. 나와 동갑인 서른일곱 살이었다. 그 나이에 다 살았다니, 충격을 받았다. 나는 감옥 살다 나와 '이제부터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환경단체의 영향력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청으로 찾아가본들 소용이 없었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을 사회 불순 세력으로 봤으니까. 내가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에서 충격을 줬던 이타이이타이병이 상륙했다'고 하자, 환경청에서 즉각 '공해병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일본에서 공해병 전문가를 불러오기까지 했다. 압축 성장의 결과로 그때만 해도 온 나라가 공해 백화점이었다."

―한때 울산공단 기념탑에 '공업 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쓴 거지. 그때는 공장 굴뚝의 연기가 번영의 상징이었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은 1991년 발생한 '페놀 사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다.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 30t이 낙동강 상수원으로 흘러들어 갔지만, 48시간 그냥 물을 공급했다. 수돗물에서 냄새가 진동했다. 가정마다 난리가 난 것이다. 우리가 'OB맥주 불매운동'을 벌여 그해 매출이 1000억원이나 줄었다."

―경쟁사인 크라운맥주로부터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았다면서?

"크라운이 '하이트'로 상표를 바꾸고 지하 암반수 물로 만든다는 광고를 했다. 이때 맥주 시장 점유율이 역전됐다. 내게 '환경운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지원해주겠다'며 광고 모델을 제의했지만, 환경운동 하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가 있나."

―그 뒤로 '일회용품 줄이기' '쓰레기 분리 수거' 등이 이뤄졌다. 환경단체의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과격 시위를 선동하거나 배후 조종하기도 했다.

"그건 아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폭력이다. 머리에 띠 두르는 것도 싫어한다."

―해군기지 예정지인 제주 강정마을에도 환경단체 회원들이 들어가 주민 의식화 작업과 선동, 시위를 조종하지 않았는가?

"환경단체가 그랬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여러 시민단체와 정당에서 환경문제를 내세웠던 것이다."

―해군기지 반대 시위에 참여한 적 있나?

"나는 내려간 적이 없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입장은?

"환경 측면에서는 반대해야 하나 국가 안보와 직결된 국책 사업이고…. 당시 강정마을의 주민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런 절차여서 문제가 있었다."

―환경단체는 국책 사업마다 반대한다는 인상을 줘왔다. 인천공항을 지을 때도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면 갯벌을 매립해 농사 짓고 공장 짓겠다는 '새만금' 국책 사업은 옳다고 보나. 갯벌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매립해 개인이나 기업이 소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거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예정지였던 안면도나 굴업도, 부안에서 과격 시위를 부추긴 것도 환경단체 회원들이 아니었나?

"우리는 집회나 시위에서 돌멩이 한 번 던진 적이 없다. 환경단체 회원 상당수가 대기업 직장인이다. 폭력적인 방법을 쓰면 회원이 다 떨어져 나간다. "

―시위 현장에 직접 가봤기 때문에 나는 알고 있다.

"안면도 사태는 주민들이 '방사성폐기장이 들어오는 것은 충청도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흥분해 일어난 것이다. 그 뒤 굴업도가 예정지로 선정됐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 우리 회원들이 정부 유치단보다 하루 먼저 섬에 들어가 주민을 교육했다. 다음 날 유치단이 들어왔지만 쫓겨가다시피 한 것은 맞다."

―원자력 발전으로 값싼 전기의 혜택을 보고서 폐기장은 못 짓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나?

"폐기장을 짓는 데 동의해주면 계속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할 것이다. 이는 안전하지 않은 원자력에 우리가 보증을 서는 것처럼 된다."

―계속 쌓이고 있는 폐기물은 어떻게 할 셈인가?

"정부가 '지금 가동되는 23개 원전을 언제까지 모두 중단하겠다. 태양광·풍력 등 자연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하면 동의할 수 있다."

―나도 원전이 최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최악의 상황을 생각지 않고 경제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잘못이다. 원전 수명은 30~40년이지만, 그 폐기물 관리는 10배 이상 세월이 필요하다. 고준위 폐기물(방사능이 강한 타다 남은 핵연료)은 10만년 관리해야 한다."

―지금도 전력 부족으로 난리다. 원전을 중단했을 때 경제 성장 둔화, 전기요금 급상승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원전 옹호론자들이 그렇게 겁을 준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우리의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 포스코는 한 해 철강 3500만t을 생산하면서 이산화탄소 7000만t을 배출한다. 우리나라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억t이다. 한 회사가 10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업종 비율이 과도하다. 이런 공장에 공급하는 전기 가격은 전기를 만드는 연료비보다 더 싸다."

―환경단체에서 "전기요금을 올리자"는 운동은 왜 하지 않나?

"현실에서 어떻게…."

―전기요금 급상승과 생활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원전을 반대하는 것은 대책 없는 반대가 아닌가.

"원전을 반대하면서 전기 쓸 것 다 쓰면 안 된다. 우리 세대가 전기를 싸게 공급받기 위해 다음 세대에게 원자력이라는 위험한 물질을 넘겨주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유럽처럼 풍력과 태양광 등으로 살아가는 도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환경단체는 이념적으로 좌파인가?

"기후 변화로 피해를 볼 때 좌우 이념 구별이 있나."

―과거 환경운동연합은 '총선시민연대'를 주도해 불법적인 낙선운동을 벌였다. 정파적이 아닌가?

"구태·부패 정치인들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대상자는 한나라당이 많았다."

―이는 유권자가 투표로 결정할 문제지, 당신들 잣대에 안 맞으면 "낙선시키자"는 게 얼마나 오만한가?

"당시 '100인 시민위원회'가 토론해 그런 기준을 만들었다."

―그 위원회라는 게 그쪽 성향 아닌가?

"약간의 편향성은 있었다. 나 자신은 어느 한쪽 이념에 극단적으로 빠지는 걸 정말 싫어한다. 이는 마치 폐쇄회로에 갇히는 것과 같다. 과거에 좌파 단체들이 '안티조선 운동'을 벌일 때도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누가 내게 '좌파 성향'이라고 하니, 내 딸이 '좌파가 아니라 친미주의자인데' 하며 웃었다. 내가 미국을 자주 다니니까."

―환경운동을 하면서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아 월 수백만원씩 받았다. 지금도 맡고 있나?

"벌써 떠났다. 여론의 비판을 받았지만 그 문제에서 나는 당당하다. 기업 이사회에 참석해 환경 친화적인 사업 결정을 내리게끔 했다."

―환경단체가 대기업 후원을 받는 것은 정당한가?

"회비만으로 운영이 어렵다. 바람직한 것은 세금으로 비정부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당신은 금전 문제로 1·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에 계류 중이지만.

"내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고 찍혔다. 검사가 '털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와 미치겠다'고 했다지 않나. 내 사안에 주변 사람 100여명이 조사받았다. 나는 정말 떳떳하다. 이 사건으로 딸도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횡령한 돈으로 내가 유학을 갔느냐며, 2년간 말도 안 걸었다."

―유명해졌으니 정치를 할 때가 안 됐나?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불러 정치하라고 설득했고, 여야로부터 동시에 공천 주겠다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내가 정치권으로 가면 '저러려고 환경운동 했나' 하는 소리를 듣지 않겠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로 옮겨간 이들치고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박원순씨가 정치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언론인도 정치판에 들어가질 않나. 그에 대한 평가는 서울시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릴 것이다. 다만 그가 떠난 참여연대와 희망제작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 지지했나?

"선거운동을 해준 적이 없다."

그는 아직도 자가용이 없고, 머리 감을 때 샴푸 대신 비누를 쓴다. 환경운동가라면 으레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