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性해방이냐, 性으로부터의 해방이냐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난 3월부터 집단 성매매 혐의로 프랑스에서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올해 예순세 살인 그는 몇몇 기업인들과 함께 성매매 여성들을 불러 프랑스 안팎에서 숱하게 섹스 파티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파티에서 그룹 섹스를 즐긴 사실은 인정했지만 파티에 온 여성들이 매춘부라는 것은 몰랐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자신의 쾌락 추구를 '리베르티나주'(libertinage·자유로운 방탕)라며 정당화했다. 그는 사건을 담당한 여성 예심판사 앞에서 섹스 철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리베르티나주는 일반적으로 금지된 일이므로 서로 신뢰하는 친구 또는 친구의 친구끼리 할 수밖에 없다. 리베르티나주에선 아무도 (욕망의) 객체가 아니다. 참가를 원하는 두 명의 주체가 있을 뿐이다."

그러자 여성 판사가 반격을 가했다. "스물여섯 일곱 살짜리 여성들이 금전 거래라는 대가 없이 예순세 살 먹은 남자랑 섹스 파티에서 쾌락을 찾겠느냐." 이에 대해 스트로스 칸은 "남녀가 서로 유혹하는 데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문학과 영화에 그런 사례가 가득하다"고 태연하게 답했다. 그의 발언은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몽드와 르 피가로가 검찰 조서를 빼내는 특종 경쟁을 벌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이번 사건의 진실은 성해방이냐 성매매냐, 그것이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 스트로스 칸은 유혹이 나이를 초월한다고 했지만 섹스 파티에 갔던 스트립걸은 "나는 쾌락을 좇아 스트로스 칸과 자러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늙고 뚱뚱하다"고 언론에 털어놓았다.

18세기에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는 일흔두 살에 회고록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전 유럽을 떠돌며 120명이 넘는 여성과 연애담을 빚어냈던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회고록을 써내려 갔다. 그는 "육신은 비록 늙었으나 내 영혼과 욕망은 영원히 젊기 때문에 이 회고록을 쓴다"며 "내가 죽은 뒤에 공개될 것이므로 나를 아무리 비난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의 독자층을 '무지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쾌락을 통해서 구원받을 젊은이'로 삼지 않았다. "온갖 세상 경험을 통해 더 이상 유혹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 불도마뱀처럼 단련되어 있어서 더 이상 정념에 불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소설가 박범신의 장편 '은교'는 육신은 늙었으나 영혼과 욕망은 젊은 시인의 순애보(純愛譜)다. 2년 전 출간돼 8만부 넘게 나갔고, 올해 영화가 개봉된 뒤 10만부를 더 찍었을 정도로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은교'는 예순아홉 살 시인이 열일곱 살 소녀를 사랑한다는 이야기지만 노망(老妄)난 변태성욕자의 회고록은 아니다. 카사노바 회고록 못지않게 '영원히 젊은 영혼과 욕망'에 바탕을 두고 '더 이상 정념에 불타지 않는 사람들'을 대변한 소설이다.

예순여섯 살인 작가 박범신은 육체의 '욕망'이 아닌 영혼의 '갈망'을 그리려고 했다. 소유 욕망에서 벗어나 소유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대상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었다. '은교'의 노시인은 그 갈망을 유지함으로써 늙음의 슬픔을 견디는 시(詩)를 즐겨 인용하고 직접 짓기도 했다. 작가 박범신은 "늙음은 피할 수 없지만 이왕이면 그런 갈망을 지닌 채 늙어가는 게 좋다"고 했다.

소설 '은교'는 문학에 대한 탐구를 담은 예술가 소설이기도 하다. 늙은 시인은 시의 자족성(自足性)을 강의한다. 시에 등장하는 별은 무조건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사회가 독자에게 주입한 통념에 불과하다. 별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고 그냥 별이다. 시인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젊음이 늘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늙음이 늘 추한 것도 아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스스로를 카사노바의 후예로 여기는 듯하다. 그도 언젠가 카사노바처럼 회고록을 쓸지 모른다. 2년 전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카사노바가 프랑스어로 쓴 회고록 육필 원고를 700만유로(약 110억원)를 주고 샀다. 카사노바 회고록은 18세기 유럽 성문학의 걸작이자 풍속사의 귀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로스 칸이 돈을 주고 쾌락을 산 것이 밝혀진다면 카사노바처럼 성해방의 선구자로 추앙받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그의 육체도 언젠가는 더 이상 리베르티나주를 즐길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그때 만약 소설 '은교'가 프랑스어로 번역된다면 그에게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다. 육체의 욕망에서 벗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영혼의 갈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것은 문학이 생(生)의 끝에 닿아가는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위안의 속삭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