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예금 가입자 "금리보다 의리"

요즘 같은 저(低)금리 시대에는 이자 한 푼이 아쉽다. 최근 산업은행에서 연 4.5% 금리를 내건 KDB다이렉트예금을 앞세워 7개월 만에 1조원 이상의 부동자금을 끌어들인 것은 예금자들이 약간의 금리차이에도 매우 민감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금리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변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람들은 재테크에도 재미와 가치를 추구한다. 이런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것이 국민은행이 지난 4월 출시한 '프로야구 정기예금'이다. 이 예금은 출시 2개월 만에 목표 금액 1조원을 끌어들인 뒤 12일 판매가 마감됐다. 국민은행이 산업은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지점망과 고객기반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은행가에선 보기 드문 마케팅 성공사례로 보고 있다.

◇보너스 금리보다 '재미' 우선

프로야구 정기예금의 상품 구조는 단순하다. 기본금리는 연 3.8%인데, 전체 프로야구 관중이 700만명을 넘으면 0.1%포인트 금리를 더 준다. 현재 추세라면 관중 700만명은 무난할 것으로 보여 금리 출발점이 연 3.9%인 셈이다.

나머지 우대 금리는 가입 시 선택한 팀의 성적에 따라 달라진다. 예금자가 찍은 팀이 4강에 오르면 0.1~ 0.2%포인트의 보너스 금리가 추가된다. 예금자가 지난해 4강팀에 들었던 삼성·롯데·SK·기아 중 하나를 찍었는데, 이 팀이 또 올해 4강에 진입하면 0.1%의 보너스 금리를 주고, 지난해 하위권 팀 중 하나를 찍었는데 올해 4강에 들면 0.2%의 추가 금리를 준다. 여기에 더해 찍은 팀의 성적이 지난해보다 좋으면 다시 0.1%포인트의 금리를 더 얹어 준다.

금리에만 목을 매는 예금자라면 지난해 시즌 1위 팀인 삼성은 피하고, 지난해 꼴찌(8위) 팀인 넥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넥센의 경우 올해 7위만 해도 0.1% 포인트, 4위 이상에 들면 0.3%포인트 보너스 금리를 더 챙길 수 있다. 반면 작년 1위라 순위가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삼성을 선택하면 추가금리가 기껏해야 0.1%포인트이다.

그런데 예금에 가입한 8만7000명 예금액을 기준으로 보면 SK 와이번스를 선택(26%)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삼성(23%)·롯데(14%)·두산 (12%)·넥센(9%)·기아(8%)·LG (5%)·한화(4%) 순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국민은행 관계자는 "금리에 상관없이 평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찍었다. 재테크에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돈보단 애향심이 팀 선택 좌우

국민은행이 예금주의 지역별 선호팀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 예금자는 평소 응원해 온 지역 연고팀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경남·울산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경북·대구에서, 기아 타이거즈는 광주·전남·전북에서 각각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현재 프로야구팀 순위가 8위에 그쳐 우대 금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한화 이글스도 연고지인 충남·대전에서는 예금액 선두를 지켰다.

18일 기준 프로야구 순위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두산·삼성·기아·한화를 선택한 팬들은 현재 상태론 연 3.9%의 금리밖에 못 받는다. 반면 선전하고 있는 LG·넥센을 선택한 예금주는 연 4.2%의 금리를 챙길 수 있다. 평균 예금액이 1000만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화 예금주는 LG나 넥센 예금주보다 3만원 정도 이자를 손해 보는 셈이다. 삼성을 찍었다는 예금주 오모씨(35)는 "이자 몇만원 더 벌자고 20년 넘게 응원하던 팀을 버릴 순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