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다른 나]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는 윤성학(41) 농심 홍보팀 차장

"시(詩)와 시가 아닌 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이 둘의 경계는 '다르게 보기'와 '새롭게 보기'입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주변의 문화·예술 복합공간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글쓰기 강좌 중 시 특강에서 제가 수강생들에게 늘 꺼내는 첫마디입니다. 교사, 출판사 직원, 취업 준비생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강생들에게 짧은 시간에 시 쓰는 요령을 가르치기보다 시가 가진 특징을 함께 살펴보고 좋은 시를 소개해줌으로써 '시는 어렵다'는 선입견부터 없애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식품업체 농심의 홍보팀 차장입니다. 주로 미디어 전략과 홍보 계획 수립, 보도자료 작성 등 업무를 맡고 있지요. 동시에 시인(詩人)이자 문학 강사이기도 합니다. 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저는 1997년 농심에 입사, 직장생활을 하던 중 2002년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2006년 첫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를 출간했고, 올가을 새 시집 '국부론'이 나올 예정입니다.

제가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시인이라고 말하면 '보도자료를 잘 쓸 수 있어서 좋겠다'는 답이 가장 먼저 돌아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 중 보도자료 작성은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업무 대부분은 홍보전략과 스토리텔링 작업입니다. 특히 회사 내 각 부문에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주제들을 묶어서 스토리로 만드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최근에 나온 신제품 라면 '블랙신컵'은 "맛과 영양면에서 기존 컵라면과 다르다"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지요.

제가 또 하나 열심히 매달리는 일은 일반인이 시를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 홍보대사'인 셈이지요. 이를 위해 방송에 출연하거나 강연을 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 잡지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03년 11월부터 KBS '낭독의 발견' 프로그램의 팬카페를 개설, 회원 300여명이 올린 좋은 시에 대한 감상을 적고 인상깊은 시집을 소개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회원들과 함께 방송에 패널로 참석했고 카페지기로서 특집 방송에 출연해 시를 낭독했지요. 3년째 진행하는 상상마당 아카데미의 '시 특강'과 더불어 작년 말부터는 교보문고 독서경영연구소가 발행하는 북(book) 브리핑 서비스 '북모닝 CEO'에 직장인을 위한 '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 한 편을 골라 생활 속의 소소한 이야기를 곁들여 시인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가는 작업이지요.

대학 시절부터 시를 공부하고 써 왔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의 참맛과 깊은 매력을 알게 됐습니다. 몇 줄 안 되는 짧은 시 한 편에도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를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이유 역시 시는 내 주변의 사람, 사물 그리고 그들이 맺는 관계를 그린 삶의 단면도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손택수·천양희·이병률 같은 시인은 분식점, 기차역, 장례식장 등 너무나 평범한 공간에서도 누구나 공감하면서 시인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겨 있는 시를 탄생시킵니다. 시(詩)라는 한자는 풀어 보면 '언어(言)의 사원(寺)'이라는 의미인데, 사원은 대개 가장 아름답고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을 뜻합니다. 즉 시는 언어의 집합체 중 가장 세련된 형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를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세련된 내면을 가질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두 가지 삶을 동시에 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하얀 국물 라면, 매운 라면 등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며 경쟁이 치열해진 요즘 저는 직장인의 역할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시인의 삶도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방법으로 저는 항상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닙니다. 시적 영감은 시간을 정해 놓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어서 생각날 때마다 재빨리 단상(斷想)을 적어놓고 나중에 그 메모를 보고 시를 씁니다. 글의 소재를 지하철이나 버스 안의 광고에서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주말에는 대형 서점의 시집 코너를 찾습니다. 어떤 시집이 새로 나왔는지 살펴보고 그중에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이지요.

시를 읽는 것은 핵심을 바라보고 창의성을 기를 수 있어서 직장생활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함축은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핵심에 집중하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에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됩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저 멀리 여행을 다녀온 듯한 안식을 주는 것도 짧은 시 한 편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좀더 많은 사람이 전철에서, 점심시간에, 주말에 짬을 내 시 몇 편을 읽기를 희망해봅니다. 시집 속에 바람 한 가닥과 샘물 한 모금, 시원한 그늘 한 뼘이 숨 쉬고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